이번 작품의 무대는 도시가 아닌, 도시에서 400 킬로미터쯤 떨어진 숲이다. 하지만 숲 하면 떠오르는 푸르른 안식처의 느낌을 떠올렸다면 오산이다. 차고 거친 정적과 짙은 그늘 속, 바람 소리, 짐승 소리, 부엉이의 울음소리로 가득하다.
저자는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들은 숲이 복잡하고 설명할 수 없어 막막한 곳임을 알게 될 것"이라며 "사실 그런 곳은 숲뿐이 아니다. 의심과 불안이 잠식하는 우리가 사는 곳은 그게 어디이든 애당초 그렇다"고 작품의 지배적인 정서를 설명했다.
작품에서 변호사 '이하인'은 실종된 형 '이경인'을 찾아 숲에 들어간다. 금치산자 수준의 사회 부적응자인 이경인은 이 숲에서 관리인으로 일했었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형의 행적은 커녕 존재조차 모른다.
하지만 형의 행적을 좇던 이하인은 뺑소니 트럭에 치여 즉사하고, 현지 숲 관리사무실의 관리인인 박인수는 이하인의 사고와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의 잇단 방문에 이 숲을 둘러싼 마을의 비밀에 조금씩 다가서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박인수는 공무원 수험 학원에서 인생을 탕진하다 얼떨결에 이 곳에 왔고, 이렇다 할 일 없이 숲 주변을 어슬렁대던 인물이다. 그는 이하인 형제와 묘하게 폭력과 불안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을 앓았던 적도 있다. 그렇게 패배감에 젖어 있고,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인물이기에 그가 바라보는 진실은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항상 불안에 떨면서도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박인수라는 인물은 어찌 보면 아주 무기력하지만은 않다. 어찌 됐든 진실을 바라보기 위해 애를 쓰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확신하는 것에 약했던 내 모습을 투영한 인물이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현대인을 표상하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추리 소설 내지는 미스터리 소설의 성격을 띠지만, 애매모호하게 마무리되는 감이 있다. '답'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답답할 노릇이다. 작품 막바지에서 박인수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생각할 때 항상 답을 찾지 못했고 암흑과 절망에 빠졌다"고. 어찌 보면 모든 문제의 근원과 답은 우리 안에 있고, 스스로에 대한 무지가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서쪽 숲에 갔다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 366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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