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한’ 맺힌 슬픔 넘어 ‘애도’하다: 김소월, 「초혼」
[시민 시인의 얼굴] ‘한’ 맺힌 슬픔 넘어 ‘애도’하다: 김소월, 「초혼」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3.04.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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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 「초혼」

‘한’ 맺힌 슬픔 넘어 ‘애도’하다

정말 슬픈 시입니다. 소월의 울부짖음이 눈에 선합니다. 죽음에 이르러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죽은 이가 어떤 신분이건 무슨 생각을 했건 어떻게 살았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애도하는 게 사람에 대해 마지막으로 차려야 하는 예의입니다. 기도가 정해진 형식에 맞춰 자기 고백하는 것이라면 애도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타자를 떠올리며 슬픔을 함께하려는 연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는 같은 존재였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입니다. 내 상처에만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삶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이름이 산산이 부서졌으니 존재 사실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죽음이라고 소월은 슬퍼합니다. 아쉬움이 남아 견딜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담아 두었을 뿐 죽은 이를 평소에 불러 세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죽은 이와 소월 사이는 죽음이 갈라놓았는데 그 사이를 ‘떨어져 나가 앉은 산’과 ‘하늘과 땅 사이’만큼 멀다고 애통해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너를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래서 소월의 이름 부르기는 누가 시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형식을 뛰어넘어 오로지 너와 나 단둘이 마주하겠다는 타자 읽기라 할 수 있습니다.

소월은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릴 들었지만 수줍고 낯가림이 심했습니다. 동네 친구 상섭뿐이었습니다. 그는 소월보다 세 살 위였습니다. 그런데 몸이 약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딸 하나만 남기고 죽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상섭을 떠올리면 이 시에 나오는 ‘그 사람’이 더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평소 나누지 못했던 우정이 너무 아쉬워 소월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겠지요. 내가 싫다고 나를 버리고 가는 임과의 이별과는 다른 헤어짐입니다. 이렇게까지 애도하지 않는다면 평생 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친구를 얼마나 아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불행, 아픔, 나아가 죽음이 곧 내 것이라는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때 그 누군가는 우리 모두입니다. 친한 사람들을 넘어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더불어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최근 겪었던 사회적 참사를 떠올리면 소월의 시가 얼마나 생생한지 모릅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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