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 중세엔 ‘마녀 의사’ 있었다
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 중세엔 ‘마녀 의사’ 있었다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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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넓은 의미에서 치유는 치료하기와 돌보기, 즉 의료 행위 그리고 간호 행위 둘 모두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 시대에 있었던 오래된 일반 치료사들은 이 두 가지 기능을 통합했고 또 중시했다(예를 들어 산파는 단지 출산만을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어머니가 된 여인이 아이를 다시 돌볼 준비가 될 때까지 함께 살았다). 하지만 과학화된 의료가 발달하고 현대 의학 전문가가 등장함으로 인해 이 두 가지 기능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분리되어 버렸다.

-『우리는 원래 간호사가 아닌 마녀였다』 中

“한 직업군을 하나의 성별로 특정 짓지 않도록 남녀를 골고루 배치하면 좋겠습니다.” 지난 2018년 여성가족부가 교과서의 성차별적 표현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실시한 국민 참여 공모에서 나온 의견이다. 기존 교과서가 의사는 남자로, 간호사를 비롯해 교사, 기상캐스터 등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직업은 여자로 묘사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해당 공모에서는 성별에 따른 특성, 역할, 직업, 외모 등에 관한 ‘성별 고정관념’이 표현된 부분을 수정해 달라는 의견이 총 614건(68.7%)으로 가장 많았다.

이러한 성별 고정관념은 교과서 밖에서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여전히 ‘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라는 식으로 성별에 따른 직업을 나눠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실제 의사와 간호사 성비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관련 최신 통계인 ‘2021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국내 면허를 소지한 의사 129,242명 중 여성은 34,240명으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26.5%에 불과했다. 이 자료에는 간호사 성비가 나와 있지 않은데, 2018년 발표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간호사의 경우 2017년 기준 90% 이상이 여성이었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책 『우리는 원래 간호사가 아닌 마녀였다』(라까니언)에서는 “오늘날 의료 체계 내에서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며 여성과 의학의 역사적 관계를 추적한다.

여성이 의료계에 주도적인 역할로 모습을 드러낸 첫 순간은 언제일까? 많은 사람들이 간호사의 시초인 나이팅게일을 떠올리겠지만, 이 책에서는 훨씬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은 간호사이기 이전에 중세 민중을 상대로 의술을 시행했던 ‘치료사’였다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가 결부된 정교일치 사회였던 중세 서양에서 왕과 귀족 등 상류층은 교회의 지원 하에 성 안에 남자 의사를 두었지만, 가난한 농민들은 정식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대신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민간에서 치료를 행하는 여성 치료사가 존재했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현대 약리학의 바탕이 된 많은 약초 치료법을 개발했다. 출산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오늘날에도 진통제로 쓰는 맥각을 사용했으며, 유산할 위험이 있을 때는 진경제에 들어가는 벨라도나를 이용했다. 대표적인 심장질환 치료 약물인 디기탈리스를 발견한 사람도 영국의 여성 치료사였다. 그러나 민간 의료 행위를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긴 당시 사회는 이들을 마녀로 몰아 살해했고, 이 ‘마녀사냥’은 악마의 도움 없이는 여성이 똑똑할 수 없다는 당대의 믿음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1527년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파라켈수스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마녀로부터 배운 것이었다”고 고백하며 약학에 대한 자신의 글을 태워 버리기도 했는데, 낮은 계급이 이용하는 의료인이었다고 해서 그만큼 의술이 뒤떨어지는 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녀사냥으로 의학의 역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성들의 존재가 점차 지워지고, 이후 시대에도 고등교육 기회를 차단당하거나 순종적인 여성상을 강요받는 등 사회적 차별을 당하면서 의료계에서 여성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저자들은 “여성이 치료적 역할에서 배제된 데에는 일관되고 타당한 이유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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