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도 싫고 쟤도 싫은’ 당신에게…
‘얘도 싫고 쟤도 싫은’ 당신에게…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4.0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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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독일 작가 율리 체의 신작 『인간에 대하여』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봉쇄되기 직전이던 2020년 3월부터 3개월 동안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독일 아마존에서 49주간 베스트셀러에 머물렀다.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네오 나치의 이웃으로 살 수 있나요?”

대도시의 쳇바퀴 같은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쉽게 매너리즘에 빠진다. 경적 소리, 엄청난 매연, 반복되는 회의와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름만 새로운 프로젝트들. 소설의 주인공 도라는 로켓이라도 타고 떠나고 싶은 심정이다. 거기다 연인인 로베르트는 특정한 ‘정치적 올바름’에 과도하게 집착해 도라를 미치게 한다. 기후위기와 코로나라는 재앙에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는 건 좋다. 하지만 로베르트의 연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숙제처럼 머릿속에 최신 확진자 수를 업데이트하고, 옷 하나를 살 때도 그가 인정하는 가게에서만 사야 한다. 세상이 멸망한다는 시나리오도 끔찍하지만, 도라에게는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는 연인이 더 끔찍하다.

결국 도라는 원래 살던 곳과 멀리 떨어진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간다. 복잡한 윤리적 고민에 시달리다 시골로 도망쳐 왔건만, 옆집에 사는 고테라는 남자는 ‘이 마을 나치’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그런 표현을 쓰다니,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는 것은 머리 아픈 일이지만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뿐만 아니다. 선량한 얼굴을 한 또 다른 이웃은 아무렇지도 않게 인종차별적 말을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도라는 고테와 짤막한 대화를 나누며 함께 담배를 피우고, 멋대로 도라의 반려견을 데려간 고테의 아들에게 경고를 하러 갔다가 마음이 약해져 다정한 말을 건네기도 한다. 우연히 사고를 당한 고테를 구하고 나서는, 그의 생명을 구하는 게 혹시나 훗날 일어날 인종차별 범죄를 방조하는 일이 되는 건 아닐까 고민한다. 계획대로 돌아가는 일이 하나도 없다.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까? 그 곳에서도 옆집에 나치가 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도시에도 시골에도 적응하지 못하던 도라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얽혀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신들 대도시 여자들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모두 나치라 부른다”는 고테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제각각 다른 것을 두려워하면서, 자기 생각만 옳다고 믿으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도시화, 기후위기, 코로나, 빈부격차 등으로 삶이 팍팍해질수록 생각의 폭은 좁아진다.

물론 2022년에 친구들과 나치 당가를 부르는 이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 율리 체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작가는 “인간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느냐의 문제”라면서, 함께 살아가는 데 어떤 행동과 말이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지는 법, 도덕, 품위, 취향 등에 의해 갈라지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하는 걸 힘들어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사람들을 외로운 존재로 만들고,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나눌 수 있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방해한다.

더불어 사는 삶. 마음에 들지 않는 소음을 차단해 주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우리에게는 비현실적이고 공허하게 다가오는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오백 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썼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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