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없이 ‘독자’ 없다
‘과학’ 없이 ‘독자’ 없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3.2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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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가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인기가 상당하다. 지난해 말에 출간된 이 책은 현재(17일 기준) 교보문고와 예스24에서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 김지수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이어 종합 베스트셀러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 알라딘에서는 종합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알라딘 과학 분야 담당 김경영 MD는 “과학 분야 도서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했다.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룰루 밀러가 쓴 이 책은 19세기에 활동한 생물학자이자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조명한다. 조던은 전 세계 어종의 5분의 1을 파악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업적을 남겼을 정도로 의지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자신이 정리한 어류 표본이 망가졌지만, 끈기 있게 되살렸던 점은 삶의 온갖 시련을 안고 있던 저자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저자는 그의 이런 점에 감명 받아 조던의 삶에 대해 더욱 천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저자는 조던의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해야한다는 ‘우생학적’ 생각을 접하고는 크게 실망한다. 멍게는 본래 물고기나 게처럼 더 높은 차원의 형태를 갖고 있었으나 기생으로 자원을 획득해온 결과 지능이 떨어지는 생명체로 퇴화했다고 믿은 그는 인류에게도 같은 생각을 가졌다. 그는 가난과 게으름을 열등함의 근거로 삼았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내 삶의 롤모델이 실은 악당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조던의 생각에 반기를 든다.

긴 이야기 끝에 저자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자연의 모든 복잡한 분류단계가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잡초처럼 보일지 몰라도 어떤 이에게는 약초로 활용되는 민들레의 사례를 들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소중하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 책은 한 과학자의 전기나 평전처럼 보여도 실은 인문 에세이에 가깝다. 삶에 대한 다정한 위로를 보태는 메시지에 과학적인 요소가 포함돼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몇 달 전 인기를 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도 같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공동저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그동안 ‘적자생존’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던 다윈주의를 재해석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생각은 앞서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사례에서 반박되고, 사회성이 뛰어났던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통해 인간의 협력과 연대에 관한 메시지를 이끌어낸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는 게 저자가 책을 통해 하고 싶은 핵심 주장이다.

친절, 신뢰, 공감 속에 인체 건강의 비결이 숨어 있다는 『다정함의 과학』이나 과학적 지식을 통해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내 생의 중력에 맞서』 등 최근 출간된 책도 과학을 입은 다정한 메시지를 통해 독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독자들은 단순히 “서로 돕고 살아가자”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원래 인간과 자연의 본성에는 따뜻한 면모도 있다”는 말에 더욱 끄덕인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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