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동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송석주의 영화롭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동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5.0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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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스틸컷

초등학교 6학년인 고이치는 엄마와 가고시마에 있는 외갓집에 살고 있습니다. 아빠는 어디 있느냐고요? 아빠는 동생 류와 함께 후쿠오카에 있어요. 왜냐하면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해서 6개월째 각자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고이치는 집 근처 화산이 폭발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화산이 폭발하면 아빠와 동생이 있는 곳으로 피난을 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가족이 다시 모여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고이치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하 <기적>)은 규슈 신칸센 개통이 계기가 된 영화입니다. 감독은 신칸센 개통과 관련한 영화 제작을 제안받았고, 과거에 만들었던 <아무도 모른다>와는 결이 다른 ‘아이들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에 수락했다고 해요. 그렇게 탄생한 <기적>은 마주 보고 달리는 신칸센이 엇갈리는 순간, 그 자리에서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얘기를 듣고 여행길에 오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기적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던 아이들이 역설적으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는 이야기예요. 기적은 신칸센이 서로 엇갈리는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의 어느 때, 불현듯 찾아오는 것임을 아이들은 알게 됩니다. 이를 위해 영화는 여행의 과정에서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작은 기적’을 하나씩 쌓아 올립니다. 꾀병을 눈감아주는 선생님, 티켓값이 부족할 때 행운처럼 발견된 동전, 하룻밤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인정 많은 노부부 등이 그러하지요.

아이들은 그런 ‘작은 기적’을 먹고 성장하는 것일 테지요. 우리가 미처 지켜보지 못하는 순간에 불쑥 자라나는 텃밭의 야채처럼,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도 그런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커가는 걸 옆에서 빠짐없이 살핀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당연하게도 부모는 이미 ‘자라난’ 아이의 모습을 결과로써 확인할 뿐이지 ‘자라나고 있는’ 과정을 실시간 생중계 화면으로 들여다보고 있을 순 없어요. 그건 <기적>의 부모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스틸컷

고이치 형제가 친구들과 함께 소원을 빌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전후의 과정에서 부모의 개입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전에, 그 시간을 견디고 버틸 수 있도록 마음속에 ‘어떤 씨앗’을 심어주는 일일 것입니다. 그 씨앗은 용기와 희망이 될 수도 있고, 체념과 포기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영화는 그 씨앗을 고이치와 아빠가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조심스럽게 뿌립니다.

고이치는 최후의 통첩처럼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와 빨리 재결합할 것을 채근합니다. 그러자 아빠는 “나는 네가 더 큰 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 예를 들면 음악이라든가 세계라든가”라며 다소 뜬구름 잡는 말을 해요. 이에 고이치는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반문합니다. 감독은 이 과정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데,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화면상으로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마치 신칸센이 엇갈리기 직전의 순간처럼 말이죠.

‘음악’과 ‘세계’라는 아빠의 말이 고이치에게는 어떤 씨앗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이치는 인디음악이 무엇이냐는 류의 질문에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음악”이라고 말해요. 심지어 그토록 염원했던 신칸센이 엇갈리는 순간에는 소원을 빌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는 “가족보다는 세계를 선택했거든.” “아빠를 잘 부탁해.” 등의 말을 류에게 남기며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언젠간 만나서 배영을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하면서요.

<기적>은 고이치의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고레에다의 그 어떤 영화보다 완벽한 해피엔딩처럼 보여요. 가족이 영원히 함께 모여 살 수 없게 될지라도, 내 앞에 주어진 시간을 의연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 곧 중학생이 될 고이치가 깨닫는 것이 화산 폭발보다 더 기적처럼 느껴지니까요. 고이치가 기억할진 모르겠지만, 그는 여행 직전에 친구들에게 “기적은 안 일어날지 몰라도 일단 가자”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적 같은 일은 불가능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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