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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열파 지역의 도시들은 이제 수명이 다 했음을, 기존의 형태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다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머뭇거렸다. 거대한 변환이 필요한 일이어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 세계는 동일한 정책에 합의를 해야 했고, 각 국가는 그에 맞춰 법을 바꿔야 했으며, 사회는 법의 실행을 감시하고, 개인은 각성과 협력을 해야 했다.<25쪽>
창밖을 살펴보던 금보가 갑자기 머리를 낮추며 손가락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세 명의 민병대원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금보는 벽에 몸을 바짝 붙였고, 고든과 다니엘라도 금보 뒤쪽 벽에 몸을 붙였다. 머플러에 싸인 고양이들을 데려올 틈은 없었다.<105쪽>
하련이 오른발을 허공으로 내밀자 윤도 오른발을 허공으로 내밀었다. 하련이 한 걸음 내딛자 윤도 한 걸음 내딛었다. 이번엔 윤이 먼저 발을 내밀었고, 하련이 따라왔다. 두 사람은 박자를 맞추어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하련이 말했다.
“이렇게 같이 파멸의 길로 나아가 보는 거예요”<136쪽>
두 사람은 개의치 않았다. 저지대로 간다면, 이대로 내몰린다면 이와 그리 다르지 않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사랑이 시작되고 이곳에서 끝이 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흙이 쌓이고 또 쌓였다. 두 사람은 흙이 두 눈을 가리기 전 서로의 얼굴을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돌이킬 수 없이 깊은 적막이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146쪽>
[정리=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펴냄 | 332쪽 |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