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증오는 없네.” 그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저들의 도시를 보면 우아하고, 아름답고, 사색적인 종족이 분명하지 않나. 자신들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였을 걸세. 좌절에 빠져 전쟁을 일으켜서 자기네 도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일 없이 종족의 사멸을 받아들였다는 정도는 우리도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껏 우리가 살펴본 모든 도시는 흠집 하나 없이 온전했으니 말일세. (중략) 여기 이 모든 것들을 둘러보면, 누구나 우리가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 거라네. 우리는 정신없이 뛰노는 애들일 뿐이야. 장난감 로켓과 원자탄을 손에 들고 큰 소리로 떠들며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거지. 그러나 언젠가 지구도 오늘날의 화성처럼 변할 걸세. 이 풍경을 보면 정신이 들 테니까. 문명의 형태로 실례가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까. 우리도 화성을 보고 배우게 될 걸세.”<124쪽>
로켓의 불길이 황량한 초원을 달구었다. 바위는 용암이 되고, 목재는 숯이 되고, 물은 증기로 변하고, 모래와 규사는 녹색 유리로 굳어 사방에서 벌어지는 침공의 장면을 깨진 거울처럼 비추었다. 수많은 로켓이 밤하늘에 울리는 북소리처럼 정적을 부수며 날아들었다. 수많은 로켓이 메뚜기처럼 떼 지어 장밋빛 폭연을 가득 내뿜으며 내려앉았다. 수많은 로켓에서 손에 망치를 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이 기묘한 세계에 깃든 모든 기묘함을 두들겨 부수고 자기네 눈에 익은 모습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중략) 6개월이 지나자 이 벌거벗은 행성에는 지글거리는 네온관과 노란 전구로 가득한 열두 개의 작은 도시가 생겨났다. 전부 합쳐 9만여 명의 사람들이 화성에 찾아왔다. 그리고 지구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167∼168쪽>
“너 몸이 투명하잖아!” 토마스가 말했다.
“네 몸도 투명한데!” 화성인이 한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토마스는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며 온기를 느끼고는 안심했다. 자신은 현실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화성인은 자신의 코와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육신이 있어. 살아 있다고.” 그리고 반쯤 소리 내어 이렇게 말했다.
토마스는 낯선 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현실이라면, 너는 죽은 사람이 분명하지.”
“아냐, 그건 너지!”
“유령이잖아!”
“환영이면서!”
둘은 단검과 고드름과 반딧불처럼 별빛에 타오르는 사지를 휘두르며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다가, 문득 다시 자신의 사지를 더듬으며 그 존재를 확인했다.
(중략) 둘은 그렇게 고대의 고속도로 위에 서 있었다. 양쪽 모두 움직임을 멈춘 채로.<176쪽>
『화성 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조호근 옮김│현대문학 펴냄│428쪽│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