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판화, 작가 보고문으로 한일 노동자 생매장 사건에 대한 한일연대 밝혀
사건 전후 조선인들의 투쟁의 근거도 제시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본 동북지역 하나오카 광산 붕괴로 한인 징용자 11명과 일본인 노동자 11명이 생매장 당한 나나쓰다테 사건이 75주년(5월 29일)을 맞은 가운데, 나나쓰다테 사건 당시 희생자 유가족과 한인 징용자가 사측(전범기업 도와홀딩스)을 상대로 투쟁한 근거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주장은 최근 광주시립미술관이 펴낸 책 『잊혀진 사람들,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수록된 판화 2편과 시 내용이 일본인 마쓰다 도키코가 작성한 현장취재 보고서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 등의 내용과 일치한 데서 비롯됐다.
관련 연구에 천착해온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는 책 『잊혀진 사람들,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수록한 판화 2편과 시를 언급하며 “일본인 작가가 쓴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과 체험자 증언을 토대로 쓴 시,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에 전시됐던 (2월 23일~5월 26일) 판화 ‘하나오카 이야기’ 중 2편의 작품이 모두 조선인의 투쟁을 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오카 사건은 나나쓰다테 사건의 여파로 붕괴된 하나오카강 수로변경 작업을 위해 투입된 중국인 포로가 전범기업 가시마구미(가시마 건설)의 학대에 못 이겨 일으킨 봉기(1945년 6월 30일)다. 하지만 봉기는 실패했고 이들은 모두 붙잡혀 418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나쓰다테 사건이 하나오카 사건의 단초가 됐다는 점에서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과 판화 '하나오카 이야기'가 전달하는 나나쓰다테 사건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어 김 교수는 “판화작가 니이 히로하루 등이 새긴 판화에는 시인 기타 세츠지가 쓴 시가 딸려 있어 사건의 내막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츠지 시인은 첫 번째 판화 ‘나나쓰다테의 낙반’을 시로 표현해 ‘나나쓰다테가 무너지네!/ “아버지를 살려내라!”/ 회사 놈들은 뭘 했는가/ 위령제 때 돈 몇 푼 부조했을 뿐/ 산 채로 매장된 22명의 유골은/ 지금도 그대로 44년 5월의 일일세’라고 썼다. 나나쓰다테 사건으로 땅 속에 묻혔으나 유골조차 수습되지 못한 조선인과 일본인의 희생에 대한 항의를 표한 것이다.
세츠지는 시 「투쟁하는 조선인들」에서는 ‘조선의 노동자들- 농부들도 징용되어 왔지/ 그 한반도 사람들/ 마침내 참지 못하고 / 우루루 사무실로 몰려와/ “임금을 올려라!”/ “배급을 똑바로 해라!”/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손뼉쳤지/ 조선인들이지만 용기가 대단해!’라고 썼다. 이는 회사 측에서 조선인들에게 저임금에다가 배급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아 투쟁한 것을 그대로 시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마쓰다 도키코의 현장취재 보고서를 다룬 책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에 보면 ‘물을 많이 넣으니 저울에 단 밥은 무거워졌고 그 만큼 쌀 양을 줄여 (조선인들이 일본 사주에게) 물을 많이 넣지 말라고 항의했다. 또 조선인이라고 해서 위험한 채굴장에 내몰지 말라. 같은 인간이 아닌가라고 투쟁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인들이 나나쓰다테 사건 전후에 투쟁한 장면이 시와 판화 그리고 작가 보고서에 모두 기록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손뼉쳤지’라는 부분과 관련해 김 교수는 “나나쓰다테 갱도가 허물어졌을 때 한인 징용자와 일본인 노동자가 연대해 한인 징용자 1명을 구출했는데, 시에서도 조선인과 연대하는 일본인 노동자들의 심경이 그려졌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 현지에서는 2009년 이래 5년마다 한일공동으로 나나쓰다테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 추모식은 세 번째로 29일 일본에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