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적 사유의 자유(Ⅱ)
인문적 사유의 자유(Ⅱ)
  • 독서신문
  • 승인 2013.08.20 1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문학 강의 _ 이것을 저렇게도 - 다원주의적 실재론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언예종의 인문성

문사철의 언어가 인문적인 것처럼, 언어, 예술, 종교의 언어도 인문적일 것은 분명하다. 언어 현상 중 문자적 국면에 주목해 보자. 인간의 사유는 기록 문화를 통해 더욱 정교하게 되고 의사소통은 객관성을 지니게 됐다. 소수에게만 제한되었던 정보와 지식의 집적과 전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열렸다. 기록의 정확성이나 기준의 객관성은 가치나 권력의 설득력을 강화시켜, 보다 큰 규모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인문성은 문자 문화를 통해 구체화됐다.

▲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Fountain, 1917)’    
예술의 언어는 비문자적이지만, 표현과 소통뿐만 아니라 세계의 탐구나 인식의 확장의 도구로서의 언어이다.(넬슨 굳맨 2002) 예를 들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Fountain, 1917)’이라는 작품은 남성 소변기 하나를 선택해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작품의 이름은 이 작품을 구성하는 필연적 요소가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대상의 비고정성(非固定性)을 체험한다. 어떤 사물이 ‘변기’라는 기술 하에서 인식될 때 변기라는 대상이 탄생한다. 두샹은 그 사물의 변기임은 고정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 사물은 ‘샘’이라는 기술 하에서도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대상이란 사물과 기술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대상의 이름은 본질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스스로 만들어 가질 수 있는, 가소성의 주체일 수 있는 것이다.

종교 또한 인문적이다. 종교는 인간의 어떤 체계적 경험보다도 먼저 인문적이었을 것이다. 태고의 인간들은 어두운 밤의 반짝이는 별빛, 밤을 이기고 꾸준히 동터오는 새벽에 신비와 감사를 느꼈을 것이다. 상존하는 생존의 위협 앞에 겸손을 배우고, 높은 산, 깊은 바다, 넓은 광야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고백했을 것이다. 그러한 삶의 중심에 종교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인간이 자신의 사물적 취약성 앞에서 실존을 고백해 의미의 안정성에 이르는, 인간 진실성의 장치였다고 믿는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인문성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이 인문적인 것은 이 분야들이 인간 경험의 구조화나 확장을 통해 인간조건을 의미적 질서로 승화해 주기 때문이다. 지난 일세기 동안 두 분야의 괄목할만한 확장과 성공에도 불구하고, 두 분야의 대표적 인문성을 예시하기 위해, 사회과학에서는 카네만의 인간 심리 조망론을, 자연과학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의 함축에 주목하고자 한다.

카네만은 인간의 판단과 결정은 엄밀한 논리적 규칙에 따르지 않고, 상황이나 맥락에 좌우된다고 봤다. 이전의 판단과 결정에 대한 지배적인 관점들, 예를 들어 신고전 경제학의 규준이론이나 기대효용이론은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이어서, 모든 대안적인 선택지들의 결과를 고려한 다음, 자신의 이익이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합리적 인간관을 취했다.

카네만의 기여는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범주의 문맥을 구체화해 심각하게 고려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의 인문적 함축은 심오하다 할 것이다.
 
▲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적 시간 속성을 물질과 시공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상호성으로 설명한다. 물질과 시공의 상호성은 쌍둥이 역설을 통해 보여진다. 쌍둥이 중 형은 해변에 살고 동생은 산에 산다면, 중력 때문에 형은 동생보다 더 빨리 늙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 동생과 형의 차이는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이 우주선을 타고 거의 광속으로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면 형은 동생이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늙어버렸을 것이다.

개인이 어디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개인적 시간은 달라지는 것이다. 시공은 우주의 모든 일들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그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것을 ‘시간의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시간의 가소성은 크립키-비트겐슈타인의 규칙역설에서도 보여진다. 이들은 “어떠한 규칙에 의해서도 한 노선의 행위가 결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떠한 노선의 행위도 그 규칙에 일치하도록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언어나 생각은 사실적이거나 실재 반영적이기 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사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시간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따라 달리 경험되는 가소적인 것이다.
 
 
자유의 인문성과 체계의 인문학

인문학은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과 달리 그 일차적 물음의 대상을 공간적으로 갖지 않는다. 인문학은 일차적 물음의 대상을 인문성 자체에서 찾는다. 인문적 경험이나 인문적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성찰하고 탐구하는 노력인 것이다. 그러한 체계적 이야기가 없다면 인문성은 지성적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즉 인문학의 초점은 이야기의 체계성이다. 인문학의 ‘학’이라는 단어를 배움이라는 어원으로 이해하거나 틀이라는 현대적인 의미로 파악을 하거나 간에, 인문학은 말의 체계성을 일차적 목표로 한다.

인문학의 구성적 성질은 학자들에 따라 문맥적 고려, 비판 정신, 상상력, 자유, 총체적 반성, 표현 개념 등을 통해 달리 탐구 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1)‘인문학’은 인문대학에 속하는 학문들의 학제적 학문을 지칭한다 (2)인문학이란 인간의 문자나 비문자적 표현을 통하여 자연적, 사회적 질서의 제약으로부터 자유인의 가능경험을 모색하는 학문적 노력이다 (3)인문학이란 일차적으로 문자, 그리고 이차적으로 비문자를 포함한 문화활동을 통해 사람다움의 표현을 모색하는 학문적 노력이다 등으로 파악됐다.

인문학의 실제에서는 인문학을 인문대학의 제도에 나열된 여러 전공의 하나로 선택하는 ‘제도적 인문학’이 수행되고, 소위 ‘고전’을 읽음으로 최소적 조건을 만족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해 인문학’이 실천돼 왔고, 사람다움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표현 인문학’이 제안됐다. 이러한 문맥에서 이론과 실제의 구분은 엄밀하거나 정확할 수 없다. 이론적 일반화는 실제로부터의 일반화이고, 실제의 수행은 해방의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론과 실제의 구분에 주목하는 것은 양자가 필연적으로 분리되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제의 분리 필연성은 ‘인문성은 학이 아니라 성향이다’라는 가설에 의해 정당화된다.

인문성이 ‘언어를 통해 인간이 의미론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라면, 인문성은 자유로운 인간이 사람다워지는 성질이다. 인문성은 그동안 제시된 인문학의 구성적 성질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고 인문학의 분야별 실제에서 추구되고 수행되고 있는 성질인 것이다. 인문성은 자유로운 언어로 인간이 누리는 사람다움의 자유다. 이 때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에 머물지 않고 더불어 실현하는 적극적 자유다. 따라서 인문성은 사람다움, 해방, 자유, 실현을 내용으로 하는 성질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성향(性向, disposition)으로 볼 수 있다. 인문성은 그런 성질을 이뤄내는 능력인 것이다.

 / 정리 = 윤빛나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정대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이것을 저렇게도 - 다원주의적 실재론’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