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절망과 고통 속에서 죽어갔던가. 그 처절한 비극의 현장들을 떠올리면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조선인들에게는 독립이 목숨보다 더 소중한 꿈이다. 그 속내는 조선인이 되어보지 않고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마샤 김의 귀에 는 문득 안중근의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10쪽>
그 후로 안중근은 서원 공부를 포기하고 산채로 들어가 전문 포수꾼들과 함께 집단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산채의 어른들로부터 무술을 배우고 익혔으며, 사격술 훈련을 하면서 일찍부터 그들과 함께 말을 타고 평원과 험산을 누볐다.<52쪽>
“당신을 굳이 임진란 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붉은 갑옷에 빗대는 것은 아니지만요, 만삭 중인 제가 우리 분대장님의 첫 출전에 힘과 용기를 드리기 위해 한 올씩 정성으로 짠 비단 망토입니다. 부디 무운을 이루고 무사 귀가하시기를….”<75쪽>
안 상궁이 부들부들 떨면서 방안에 들어갔다. 방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흘렀다. 안 상궁은 손으로 이불을 슬며시 들어 올려 죽은 나인을 침착하게 살핀 후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홑이불로 얼굴을 가리고, 뛰쳐나가 울부짖었다.<110쪽>
안중근은 김 진사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꽂혀왔다. 그렇다. 내가 아버지의 꿈을 이루겠다는 핑계로 이 시국에 시골에 편히 눌러 살고 있지 않은가. 그는 자책감에 빠져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눈을 떠보니, 백발의 김 진사는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문득 꿈에 홀린 듯했다.<203쪽>
『하얼빈 리포트』
유홍종 지음 | 소이연 펴냄 | 328쪽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