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남지연 건축사 “50대, 여성, 건축…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법”
김은경·남지연 건축사 “50대, 여성, 건축…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법”
  • 이자연 기자
  • 승인 2025.03.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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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왼쪽), 남지연 건축사 [사진=안경선 PD]

남성들의 성역처럼 여겨지는 건축계에서 30여 년간 우뚝 자리를 지켜온 두 여성이 있다. 김은경, 남지연 건축사다. 둘의 합심으로 탄생한 책 『너에게 우주를 지어줄게』는 건축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짧은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여성이라면 더더욱.

김은경 건축사는 남건(*남지연 건축사)을 ‘공작’에, 자신을 ‘개미’에 비유한다. 화려한 이목구비와 스타일, 모두를 주목시키는 언변을 지닌 남건과, 노메이크업에 짧은 머리, 작은 목소리를 가진 자신은 달라도 한참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두 사람이라서일까? 각자의 개성 덕분에 더 다채롭고 재미있는 책이 완성되었으리라 짐작했다. 아직은 쌀쌀한 3월의 어느 날, 김은경 건축가가 대표로 있는 은평구의 화인 건축사 사무소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Q. 두 분이 함께 책을 쓰기로 한 계기와 그 과정을 직접 듣고 싶다.

김 - 남건이 책 한번 써보자고 한 게 계기였다. 혼자였으면 아마 안 썼을 것 같다. ‘너에게 우주를 지어줄게’라는 제목도 남건이 지었다. 표지 그림의 작가도 남건의 친구 분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남건 덕분에 이루어졌다. 나는 묻어갔다.

남 – 그건 언니(*김은경 건축사) 얘기고. 나는 글 쓰는 재주가 별로 없다. 언니가 글을 잘 손봐줬다. 둘이니까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성 건축사들이 별로 많지 않았을 때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까 경험하는 것들이 보통의 일상과는 좀 많이 다르다. 마침 언니도 같은 은평구에서,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 일하고 있었다. 오십 대, 여성 건축사, 워킹 맘으로서 공감대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냥 우리, 하고 싶은 얘기 한번 해보자 하고 쓰게 됐다. 언니가 흔쾌히 좋다고 했다.

김 - 흔쾌히 대답했던 건 몰라서 그랬다. 그냥 하면 될 줄 알았다. 근데 엄청 어려운 일이더라.

Q.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나?

김 - 말과 글은 차원이 다르다는 걸 책을 내면서 알게 됐다. 남건과 책을 내기 위해 1년 정도 서로의 말과 글을 나눴다. 서로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남 – 책을 쓰는 게 이렇게 용기가 필요한 일인 줄 몰랐다. 누구에게도 나의 민낯을 이렇게 디테일하게 전달해 본 적이 없는데. 내 모든 걸 들킨 것 같은 느낌. 모르는 분이 책을 읽었다며 찾아온 적이 있다. 당황스러웠다. 내 살색을 보여준 것 같았다.

Q. 두 분이 함께 책을 낸 것에 관해 동료 건축가들의 반응은 어떤가.

김 - 두 딸이 다 건축을 하는데, 먼저 읽어보더니 주변에 나눠주려고 책을 많이 들고 가더라. 동기부여가 됐다는 분들도 꽤 있었다. 건축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가 쓴 것들과 비슷한 경험이 많을 텐데 그런 것들이 책으로 나오니까 ‘나도 한번 써볼까?’ 하게 되는 거다.

Q. 책 속 ‘스몰토크’처럼, 두 분이 일상에서도 종종 만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지? 오십 대가 되어 새롭게 맺어진 인연인데, 그 인연이 서로의 일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남 - 언니랑 처음 만났을 때 굉장히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 직종 자체가 여자가 메인인 직업은 아니지 않나. 거기서 살아남으려다 보니까 그들의 시각, 그들의 입장에 맞출 때가 많았고 ‘내가 이상한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음속으로 외로운 포인트가 있었다. 아마 언니도 그런 부분이 있었을 거다. 그래서 내가 “나랑 대화 좀 하자”고 붙잡았다. 우리 사무실에 언니가 왔을 때, 와인을 내놓고 집에 못 가게 했다. 그날 새벽 2시까지 이야기했다. 우리가 같은 시대에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각자 쌓여 있는 ‘한(恨)’ 같은 게 있구나. 언니랑 대화하면서 약간의 숨구멍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김 - 그 외로움이 결국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그런 시간들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나 싶기도 하다. 일이 있어야 만나는 사람은 지인, 일이 없어도 만나는 사람이 친구라고 한다. 지연과 나는 용건이 없어도 연락하거나 만나는 일이 생기는 사이다. 요즘은 서로가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느닷없이 만나는 순간들이 항상 있을 것을 안다.

김은경 건축사 [사진=안경선 PD]

Q. 여성 건축가로서 ‘현장’(혹은 더 광범위하게, 일터)에서 부딪혀야 했던 벽과 그 벽을 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면?

남 - 예전에는 기를 쓰고 어떻게든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다. 책에도 적었지만, 나름의 노하우도 익혔다. 그런데 지금은 그 부분은 굉장히 수월해졌다. 그래서 되게 편하다. 부질없는 에너지 낭비를 안 하니까. 아마 일하는 여성 누구나 다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을까? 직장 일 때문에 울다가 웃다가. 우리는 그 강도가 남들보다 좀 더 세고 더 잦았을 뿐.

김 - 스쿼트 처음 하면 허벅지가 찢어질 것 같지 않나. 그걸 견뎌야 밥 먹듯이 된다. 벽을 넘고자 독기를 품었던 때는 벽이 어디에나 있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벽. 그래서 알게 됐다. 내가 벽이라는 걸. 이젠 벽을 넘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 - 각자 방법이 다른 것 같다. 약간은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사람도 있고 싸우려고 덤비는 사람이 있고. 젊은 친구들도 아마 각자의 방법을 찾지 않을까.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부딪혀 본다면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을 찾을 거다. 가고자 하는 방향만 안 잊어버리면. 대부분은 그 과정이 지치다 보니 가고자 하는 방향을 포기해 버린다. 근데 그 과정을 포기하면 결국은 찾지 못한다.

김 – 누군가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누군가 조언을 해 주면 그게 근력이 될 수 있다.

남 – 나는 생각이 다르다. 혼자 하는 거다.

Q. 김은경 건축사가 회장을 맡고 있고, 남지연 건축사도 회원으로 있는 은평구건축사회 여성위원회는 2024년에 경력단절여성에게 건축 관련 프로그램과 전문교육 수행 후 취업으로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이후 위원회가 새롭게 도모하고 있는 일들이 있나.

김 - ‘언제까지 우리가 누구나 찾는 건축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 우연히 청담동 명품관 건물을 봤다.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남건에게 “우리 좋은 건물도 보러 다니고 공부도 하자”고 했더니 “나도 그 생각했었어”라고 했다. 여성위원회에도 제안했다. 그렇게 역량을 키우면 좋지 않을까. 일을 도모하는 것도 좋지만 내실을 채우는 것도 필요하니까.

김은경(왼쪽), 남지연 건축사 [사진=안경선 PD]

Q. 두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건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남 - 건축주가 좋아하는 건축. ‘좋다’는 건 주관적인 거니까 건축주의 만족도가 높은 집이 좋은 집인 것 같다. 모든 디자인 코드를 맞춰주겠다는 게 아니다. 서로 많은 대화가 오가야 하고 완성도도 높아야 한다.

김 - 같은 생각. ‘사람에게 남는 집’은 특별하지 않다. 모두에게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남의 집을 지어주는 사람’이다. 디자인 들어가기 전에 건축주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도 우리 일 중 하나다. 여성 건축가의 강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Q. 건축사 사무소에 여성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취업이 어렵지는 않은지? 건축가를 꿈꾸는 여성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 - 내가 취업할 당시에는 여성을 아예 쓰지 않는 분위기였고, 취업한다 해도 ‘어디까지 버티나?’ 내기라도 건 사람들처럼 굴었다. 그런데 요즘은 건축사사무소 신입사원 중 여성의 비율이 50%를 넘고 있다. 세상이 변하긴 했다. 건축은 누가 해도 좋은 일,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재미있다면 그냥 하라고, 계속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당장 힘이 들어 죽을 거 같다면, 손 내밀어 주겠다….

남 - 우리 사무실은 늘 사람을 뽑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좋은 직원을 구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대형 사무소만 보지 말고 눈높이를 낮추면 어떨까. 결코 자리가 없는 게 아니다. 앞으로 더 개선될 거고, 얼마든지 기회는 널려 있다고 생각한다.

김 - 조금 더 맹렬히 문을 두드리면 되지 않을까.

Q. 30여 년간 맹렬히 커리어를 경영해 오셨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번 아웃’이 오기도 하고 방황하는 ‘오춘기’가 오기도 한다. 이때를 현명하게 넘기는 팁이 있을까.

김 - 다행히도 아직은 오춘기도, 번 아웃도 맞이하지 않았다. 지금은 정신없이 분주하게 일하는 게 좋다. 잦은 여행이 약이 되었을 수도.

남 - 무언가에 몰입하거나 아예 벗어나 있거나 두 방법 외에는 없었다. 모든 현대인의 병일 텐데 특히 젊은 친구들은 이 텀이 빠른 것 같다. 비교를 순간순간 하면 못 견딘다. 쭉 가다가 돌아보면 ‘내가 좀 잘한 것도 있었네? 실력이 이만큼 늘었네?’ 하고 버티는데, 자꾸 들여다보면 나는 여전히 작고 부족하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은 그냥 좀 덜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보면 좋겠다. 내가 성장할 때까지 주변을 좀 차단할 필요가 있다. 그런 시간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Q. 막연한 불안 속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 여성들에게, 특히 일과 삶의 균형, 지속적인 커리어 개발을 고민하고 꿈꾸는 여성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김 - 막연한 불안은 지나가야 할 길의 중간 어디쯤이지 않을까? 지금의 불안은 나중의 안정을 꿀로 느끼게 해 주는 선물이다. 얼마 전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었는데, 그 책을 권해주고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애들은 자란다.)

남 – 혹시 육아 때문에 고민이라면, 아이는 그렇게까지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엄마가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걸 보여주면 아이도 보고 배운다. 포기하지 않으면 방법은 다 있다.

남지연 건축사 [사진=안경선 PD]

Q. 집을 짓는 일은 우주를 짓는 일이라고 했다. 건축이 두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남 – 잘 모르겠다. 근데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일은 맞는 것 같다. 건축은 인간 공부, 세상 공부다. 그리고 자본에 밀착돼 있다. 인간의 욕망을 부풀려주는 일이라 늘 욕망을 들여다본다. 보고 싶지 않아도 자꾸 보게 된다. 그 속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예전에는 너무 불편했다. 계속 견뎠다. 건축을 통해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김 – 나에게 건축은 ‘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해본 일 중에 나를 가장 가슴 뛰게 하는 일이자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돈을 많이 벌게 하는 일이다. 또 요즘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건축을 해서 이런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Q. 책 속에서 오십 대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야 할 시기’라고 했다. 작가 소개란이 인상적이었는데, 김은경 건축사는 머리가 하얗게 세면 ‘흰머리 건축방’을 지어 무료 건축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고, 남지연 건축사는 나이 60이 되면 건축을 떠나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거라고.

김 – 1층에 흰머리 건축방을 운영하고, 2층에 세를 내주고, 3층에 거주하는 모습을 구상하고 있다. 일단 흰머리를 그대로 놔두고, 그땐 돈을 못 벌거니, 지금 열심히 벌려고 노력 중이다.

남 - 유학 가고 싶다.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면서 살아보는 게 어릴 적 버킷리스트였다.

Q. 2025년 트렌드 키워드 중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것이 있다. 일상의 평범함에서 위안을 찾자는 것인데, 두 사람은 아보하와 야망 중 어떤 단어와 더 가까운지? 각자가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를 알려 달라.

김 - ‘아보하’를 지향한다. 나의 성공은 일주일에 ‘아보하’ 3일이다.

남 - 야망. 어디까지 달려야 되는지 자주 고민하는 편이다. 한 가지 알게 된 건 나는 끊임없이 성장해야 살아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는 거다. 대신 지치지 않으려면 적절한 기준치는 정해둬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는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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