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평범함 탈출하기: 고전 독서와 홈스쿨링, 그리고 17살이 책을 쓰기까지의 여정
[특별기고] 평범함 탈출하기: 고전 독서와 홈스쿨링, 그리고 17살이 책을 쓰기까지의 여정
  • 김하은
  • 승인 2025.04.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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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어스 김하은 튜터<br>
필로어스 김하은 튜터

여러분은 ‘평범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특별함’은요? 여러분은 스스로가 ‘평범하다’고 느끼나요, ‘특별하다’고 느끼나요?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은 어떤가요? 그들은 ‘평범’한가요, 아니면 ‘특별’한가요?

누구나 어렸을 때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낍니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원하는 행동을 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 때문에 주변과 다양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시간이 조금 지났습니다. 각자의 개성이 존재함은 분명하지만,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들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부족하니 일단은 모두에게 동시에 같은 정보를 가르치고, 그 과정에서 습득의 편차가 발생합니다. 누구는 빨리 배우고, 누구는 늦게 배웁니다. 빠르게 배우는 이들은 ‘특별’해서 나머지에 비해 더 많은 입력값을 받게 됩니다. 어느새 지식의 내용보다 남들 대비의 습득량과 속도가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결과적으로는 한 생각만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도 중간은 가야 해’.

우리는 성장하면서 점차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던 감각을 잃고, 주어진 기준 속에 맞춰 살아가려 합니다. 지식과 경험이 쌓일수록 남들과의 비교가 중요해지고, 어느새 '평범함'을 고집하게 되죠. 다양한 지식을 고심하며 ‘나’라는 상자 안에 예쁘게 맞춰 넣는 것이 아닌 마구잡이로 콸콸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피곤하고 지칩니다. 배우는 게 재미없습니다. 내가 뭘 배우는지도, 왜 배우는지도 잘 모르게 됩니다. 어디가 끝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서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중간은 가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평범함’을 고집하게 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유년기에는 언어와 독서에 반짝였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면서 이 ‘특별함’은 ‘평범함’ 속에 잠식되었습니다. 이 ‘특별함’을 알아보고, 거기에 큰 의미를 두고 더욱 탐구하고 발전시켰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밀려 들어오는 정보들을 모두 습득해야 한다는 생각에 뒤로 미루었습니다. ‘이건 나중에 시간이 날 때 하면 되겠지’와 같은 안일한 생각에 잠겨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알아야 하는 지식이 많아지니 굳이 노력을 들여서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입력값을 인출하는 데만 바빴죠.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배웠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결국에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학교가 싫었지만 어쩔 수 있나요. 이건 다 배워야 하는 것들이라고 하는데, 배워야죠. 그러던 중학교 2학년의 어느 날, 제 인생이 달라지게 만들 씨앗이 하나 심겼습니다.

제가 고전을 처음 만난 건 필로어스의 『햄릿』 세미나에서였습니다. 재미는 전혀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암울하고 뱅뱅 돌려 말하는 인물투성이였거든요. 총 4회의 세미나에서 두 마디 정도 했을까요. 14살에게는 많이 버거운 성인 세미나였지만, 호기심이 싹 트는데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막연하게 나는 책을 좋아하고 잘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으니까요. 단지 ‘재미’를 찾기 위해 읽었던 ‘책’에서 갑자기 벽이 느껴졌습니다. 성인 세미나에서 한 마디라도 해보겠다는 오기였을까요, 헛똑똑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무의식의 절박함이었을까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간간히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고, 필로라이팅과 프리셉 영어 과정까지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인 지금은 튜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필로어스와의 인연은 거의 7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동안 꽤 많은 책을 읽었고, 그 속에서 상상도 못했던 배움과 즐거움과 인생의 원동력을 찾았습니다.

고전 독서를 하면서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학교를 나오는 것. 저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냐고요? 고전을 읽으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질문’입니다. 이 인물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거지? 이 작가의 의중은 무엇이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리고 나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질문들이 생기지만 문장 그 자체에는 답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으면서 나의 생각을 더해야지만 비로소 한 가지 ‘답’이 탄생합니다. 그 답이 맞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나의 생각이라는 것은 불변의 사실입니다. 내가 질문했고, 내가 답을 찾았으니까요.

이렇게 책을 읽고 질문하고 답을 찾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현실의 세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재미없고 싫게만 느껴졌던 학교 체계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게 결여된 것이 무엇이길래 나는 학교에서 배움과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가? 도대체 뭐가 필요하지? 난 뭘 하고 싶은 거지? 질문에 대한 해답은 생각보다도 너무 간단하고 명료했습니다. 바로 나의 ‘특별함’을 찾는 것. 잠시 지식의 습득은 늦춰야 했지만, 그보다 훨씬 값진 것들을 얻기 위해 학교 밖으로의 여정을 떠났습니다. 혹시나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이건 나의 ‘답’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지식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볼 수 있지만, 나의 ‘특별함’은 그렇지 않거든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리면 머릿속 다락방 어딘가에 처박히는 수밖에요.

처음부터 성과가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일과와 무엇부터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을 이겨내기까지에는 거의 반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해답을 찾아나갔습니다. 난 뭘 하고 싶지? 나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 시간 속에 고전은 항상 곁에 있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시기에 가장 와닿았던 고전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인데요, 방황하는 청소년기에 더해 인생 전반에 대한 질문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허클베리 핀은 긴 여정 끝에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배운 것을 토대로 살기로, 정말 자신이 ‘나쁜 애’여서 죽은 뒤에 지옥 불에 떨어지더라도 그냥 ‘헉 핀’으로 살기로 결정하는 반면에 이반 일리치는 남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지만 결국에는 외로움과 아쉬움으로 가득한 채로 생을 마감합니다. 허클베리 핀과 이반 일리치의 삶의 경험과 과정에 대해 읽으면서 ‘좋은 삶’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답은 어쩌면 뻔하지만 중요한 건 직접 생각하고 직접 도달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것, 내게 의미를 주는 것을 좇다 보니 글에 대한 열정이 피어났습니다. 필로어스 글쓰기에서 시작해서 2021년에는 국제철학올림피아드에서 유일한 홈스쿨러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다음에는 100일간의 글쓰기를 도전했습니다. 그동안 학교 밖에서 있었던 일들, 거기에서 배운 것들, 지금 하고 있는 것들, 지금 읽고 있는 것들을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블로그에 기록했고, 그다음 해에는 『나는 내가 될게, 너는 네가 되어줘』라는 제목으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에세이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미국의 로랜스 대학에서 영화영상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따로 영어 공부를 하지도, 입시 학원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평상시에 영어로 고전을 읽고, 토론하고, 생각한 바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전부였습니다. 몇 년간의 고전 독서를 통해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었고, 많고 많은 에세이들을 스스로 쓸 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명확해지니 지식을 배우는 것 또한 다시금 즐거워졌습니다. 학교에서의 공부는 늘 재미없는 것이었는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열정과 성취감을 맛보고 있습니다. 어디에 속해 있고 거기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결국 중요한 건 방향성과 마음가짐인가 봅니다.

고전 독서만으로는 나의 ‘특별함’을 찾을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탐구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근성과 어떤 책이든 돌파하고 말겠다는 도전 정신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진주의 탄생 과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진주는 사실 별것 아닌 이물질들이 조개 속에서 결합하면서 생기지만 가치가 높은 보석이잖아요. 조개의 살에 감춰서 형성 과정이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지만 아주 작고 미묘한 성장들이 쌓이고, 어느 순간 알을 까보면 정말 예쁜 알맹이를 볼 수 있어요. 고전 독서도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그 자체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효과는 정말 대단하니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평범함’을 벗어나 ‘특별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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