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신문 김문희 객원문화기자] 우리는 그 공간으로 인해 소통을 하고 하나가 될 수 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site whanki wave라는 전시타이틀에서 'wave'는 이 전시의 가장 큰 슬로건이자 소통과 융합이라는 전시 포인트를 잡게 해주는 길라잡이가 된다. 이미 작가들은 관람객에게 '소통과 융합'의 주제를 전달하기 앞서 이 전시를 통해 모이게 된 그들의 시작부터가 주제의 시작을 알리게 된 셈이다. 혼자인 것을 즐기고 주변에 관심이 점점 희미해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들을 시작으로 작품을 통해 가까워지고 즐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그러면서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전시에 매료되어 어느샌가 마음의 안정을 찾고 긍정의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또한 공간이라는 제약적인 곳에 인위적인 설치로 전달하는 미술이지만 이 안에는 자연이 있고,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빛이 반짝거리고 역동적인 장치를 이용하여 섬세함을 표현하여 마음의 치유를 줄 수 있는 아이러니한 관계의 이 전시는 파도의 잔잔함과 거친 모습의 양면을 담은 듯 하여 site whanki wave의 가장 진정한 뜻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미술관, 그자 자체로 하나의 공간미술이 되다>
미술관안에 전시중인 작품들도 작가 개인의 주제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지만 미술관 공간에 맞춰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더 크게 보자면 미술관 내의 공간적인 면을 넘어 미술관 자체가 주변의 산과 나무 집 등을 캔버스 삼고 커다란 작품이며 공간미술이기도 하다. 주변의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은 채 어우러지게 설계되고, 계단부터 입구의 모양, 건축에 쓰여진 재료 하나 하나가 예술작품이고 뜻이 있다. 이들은 모두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연결이 되어준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건축하고 자연적 현상으로 하나의 작품을 팔색조같은 모습으로 관람할 수도 있는 모습은 이 프로젝트가 이벤트성으로 끝나지 않고, 미술관을 포함하여 그 주변은 이미 공간미술의 정체성을 가진 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내용을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이 로빈 미나드<Robin Minard)의 작품을 꼽는다.
눈이 갓 내린 드넓은 설원같은 공간에 푸른빛과 잔잔한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추구하는 소통과 융합의 메세지를 가장 추구하는 작품인 것 같다. 3층의 공간을 최적화하여 사용하고, 푸른빛은 일출, 일물에 따라 빛의 세기,방향도 달라진다. 소리도 움직이는 발걸음에 따라 느끼는 음의 깊이도 다르며 마치 드넓은 설원을 뛰어넘어 우주의 무중력 상태에서 떠다니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작품을 느끼면서 절제되었지만 오감을 통해 벽없이 자신만의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정해진 의미없이 본인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고 또 다른 질문을 던지게끔 만들수도 있다. 단순한 설치미술 그 이상을 보여주는 공간의 미를 자연스럽고 신비롭게 풀어나간 오감만족의 전시이다.
<결국은 다시 자연으로, 자연이 주는 치유>
스피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나며, 스크린을 통해 폭포가 보이고, 빛과 3D 스캐닝이라는 첨단기술로 자연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소통과 융합이라는 주제를 전달하는 과정은 기계적이고 현대적이지만 자연으로 마무리 짓는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현대적인 삶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그것들 또한 자연 속에서 태어나고 발견됐으며, 그 기술을 통해 다시 자연을 보여준다. 세상은 놀라운 일의 연속이며 그것에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지만 우리도 자연이고 자연의 일부라 결국 평온함을 원할땐 자연으로부터 치유받길 원하고 그게 가장 좋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다. 또한 'Circle Of Life' 생명의 순환의 메세지도 전하고 있는데 결국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자연에서 다시 시작되어 탄생하고 발산한다는 것을 관람객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것도 인위적이지 않고 파도에 실려가듯 자연스럽게 확장되길 바랄 것이다.
이 곳에선 벽에 비친 빛 한 줄기도 작품이 될 수 있고, 바람에 흩날리는 풀잎도 근사한 공간미술로 보일 수 있다. 자연 그대로를 예술로 보는 관점으로 굳이 바라보지 않아도 발자국을 뗄 때마다 힐링을 받고 나만의 프레임으로 전시된 미술작품을 보는 것이기에 공간이라는 단어를 쓴다기 보단 내가 걷는 이 한걸음 자체가 작품이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이다. 아마 그 이 이상의 무언가를 쟁취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즐거운 호기심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