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자기 개발 vs 자기 계발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자기 개발 vs 자기 계발
  • 스미레
  • 승인 2020.06.29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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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동 누구는 요만한 애 키우며 열심히 자기 개발 하더라. 학교도 다니고, 모임도 나가고, 핼스도 가고, 얼굴 시술도 받고. 윤하 엄마도 나가서 뭘 좀 해.”

아이가 어릴 때, 가끔 오시던 이모님이 그러셨다. 그렇게 친절히 짚어주지 않으셔도 안다. 어딜 가나 다들 그 이야기뿐이니까. 티는 안 냈지만 속에선 작은 파문이 일었다. 왜 뭘 해야되지? 아니, 뭘 ‘더’ 해야되지? 아이만 보고 있어도 얼마나 힘이 드는데. 새삼스레 ‘너도 남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이 ‘너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란 말만큼 폭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 키우며 자기 개발에까지 열을 올리는 이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엔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아이 두 돌 쯤, 미술사 수업을 들으러 나갔었다. 즐거웠다. 숨통이 트였다. 처음 10분간은 그랬다.

하지만 그 후, 우는 아이와 10분에 한 번씩 통화하며, 시들시들한 몸으로 듣는 수업은 불편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미술사이건만, 빠져들 수가 없었다.

‘나 요즘 수업 들어 ’한 마디에 ‘애만 키우지 않는’ 힙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된 듯 우쭐했던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아직은, 아닌 것 같았다. 나의 화려한 외출은 두 학기 만에 막을 내렸다.

아이와 씨름하다 끝내 시들어 버리는 에너지 푸어에겐 사교 모임, 자격증 취득, 1인 미디어 개척, 수업 참여, 몸 만들기 등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선명한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다들 어쩜 그렇게 하는 건지 부럽고 신기할 따름이다. 종이 한장 들 힘조차 없는 순간에도 육아 외 스팩 쌓기를 권유당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바람결에, 매일.

그런데 과연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위한 ‘자기 개발’이 맞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 외향적인 사람은 돈을 벌거나 운동을 하거나 경쟁에서 이기는 등 외적 보상 활동에 민감하다. 게다가 이런 활동이 사회적 소통과 결합하면 행복의 수준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두뇌 활동이 내적으로 더 활발한 내향인에겐 이런 외적 활동이 피곤할 뿐이다. 

그런데 자기‘개발’과 자기‘계발’의 차이를 아시는지.

□ 자기 개발: 자기에 대한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냄. 또는 자신의 지식이나 재능 따위를 발달하게 함.
□ 자기 계발: 잠재되어있는 자신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 (출처: 국립국어원)

사실 이 둘은 매우 다르지 않다. 실제로 많은 경우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사람들은 굳이 둘을 구별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미묘한 차이가 보인다.

[‘개발’과 ‘계발’을 비교해보면 모두 상태를 개선해 나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공통적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계발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 무엇은 잠재되어 있어야 하지만 개발에는 이러한 전제가 없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개발’은 단지 상태를 개선해 나간다는 의미만 있지만 ‘계발’은 잠재되어 있는 속성을 더 나아지게 한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능력’이 전혀 없지만 개발하겠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계발하겠다고 말하면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도 이러한 의미 차이 때문입니다.(출처: 국립표준어학회)]

계발은 있던 것을 일깨우고 증진시킨다는 뜻에, 개발은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거나 발달시킨다는 뜻에 더 가까운 듯하다. 할 수만 있다면야, 개발도 계발도 다 좋을 테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치 않다면 자기‘개발’이 아닌‘계발’부터 시작해 봄이 어떨까. 내게 익숙하고 즐거운 일부터 건들여 보는 것이다.

육아로 포화된 내 감각엔 새로운 무엇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거기에 깃털 하나라도 더 얹었다간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읽던 책을 곱씹고 본 영화를 돌려 보고 아는 길로만 다녔다.

그런데 육아하며 새로운 눈을 얻었기 때문일까. 여지껏 ‘알고 있다’ 여겼던 모든 것이 그렇게 새롭고 감동적일 수가 없었다.

무탈히 흘러간 하루에 진심으로 감사해 보는 것, 평소와 다른 생각을 가져보는 것, 기도하는 것, 상황을 참아내는 것, 마음 담아 밥을 짓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애쓰지 않아도 언뜻 언뜻 내가 보이는 일. 한번 더 기대하고 다짐하게 하는 일. 자신을 아무렇게나 버려두지 않는 일. 결국 나를 가장 안전한 성장으로 이끄는 건, 이런 내밀한 일들일 테다.

더는 아무 때고, 아무거나 열심히 하지는 않으려 한다. 대신 지금 내 안에 고이는 시간의 선한 힘을 믿으며, 내 삶의 균형과 목적을 잊지 않을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무언가를 정말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오면 그때 힘을 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이 허한 날이면 엄마로서 애쓰는 모습만으로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에 감사하는 것. 지금 내 속에서 익어가는 것이 있다고. 그러므로 나는 나아가고 있다고. 억지스레 뭔가를 더 하지 않아도, 엄마인 나 자신과 그 삶 자체가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속삭여본다. 결국 자신만의 깊이와 속도, 빛과 어둠을 알아가는 것이 최고의 자기 계발(개발)이 아닐까?

모든 노력이 그렇듯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려는 노력 또한 가치 있다. 그렇게 믿는다.

 

 

■ 작가소개
-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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