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 완전 인싸야”라는 말에 감춰진 폭력성
“걔 완전 인싸야”라는 말에 감춰진 폭력성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5.21 14: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걔 완전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 그룹 내에서 잘 나가는 사람)야”라는 말에는 폭력성이 내재돼 있다. 그룹 내 어떤 사람을 인싸라고 규정하는 순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자연히 ‘아싸’(‘아웃사이더’의 줄임말,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사람)와 그 사이의 ‘그럴싸’라는 계급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싸에게는 계급을 결정할 수 있는 암묵적인 자격이 부여된다. 데일 카네기의 말처럼 모든 인간은 자신이 소중히 여겨진다는 느낌을 갈구하고, 인싸는 그 인정욕구를 충족하거나 박탈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룹 내 인기를 독차지한 인싸들의 입김은 누가 중요한 사람이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룹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그럴싸가 인싸를 추종하고, 인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싸의 말 몇 마디에 아싸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히 아싸는 무시당하고 소외된다. 

『편의점 인간』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일본의 인기 작가 무라타 사야카의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은 이러한 인정욕구로부터 비롯한 폐해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소설이다. 평범한 중학교가 배경인 이 소설 속 인싸는 예쁘고 패션 센스가 좋아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오가와. 소설의 화자는 못생겨서 아싸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다니자와다. 다니자와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정욕구에서 기인하는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학교의 아이들은 모든 인간이 그렇듯 타인에게 인정받아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스로 특별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오가와뿐이며 누군가의 특별함을 부여하거나 박탈할 수 있는 이도 오가와다. 그래서 아이들은 오가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오가와의 안색을 살피며 표정과 태도를 바꾼다. 오가와가 싫어하는 아이는 학교의 왕따가 되고, 오가와가 입는 옷이, 하는 말이 덕목이 된다. 오가와의 덕목에서 멀리 떨어진, 못 생기고 패션 센스가 떨어지는 아이들은 오가와의 말 한마디에 그럴싸에서 아싸로 강등될까 봐 노심초사하며 숨을 죽인다.      

보이지 않는 폭력은 오가와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폭력을 자행하는 것은 다수의 그럴싸들이다. 오가와의 인정을 받고 인싸가 되고자 하는 상위 그룹의 그럴싸들은 오가와와 반대되는 덕목들을 적극적으로 배척한다. 반면, 자칫 아싸로 강등될 수도 있는 외양을 한 하위 그룹의 그럴싸들은 그 폭력을 묵인함으로써 그것에 동조한다. 

이러한 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아이들 모두의 개성을 인싸를 닮은 어중간한 무언가로 통일해버린다는 것이다. 다니자와는 아직 계급이 형성되지 않은 초등학교 시절 저마다 반짝거리던 아이들의 변질돼버린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마을과 그 무색무취해져버린 개성들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초등학교 때는 다니자와의 친구였지만, 중학교에 올라와서 아싸가 돼버린, 그래서 다니자와조차 무시한 노부코가 인싸들을 향해 거칠게 달려드는 장면이다. 노부코는 인싸들에 의해 밀려 넘어져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달려든다. 인싸들에 의해 형성된 계급과 부조리에 정면으로 대항한다. 그리고 그 모습에 생전 처음으로 ‘아름답다’는 말이 다니자와의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 새하얀 뼈의 마을은 거대한 무덤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나’가 죽기 위한 무덤이었다”라고 생각한 다니자와는 과거 인싸들에게 매달려 전전긍긍했던 자신을 묻어버린다. 그러자 비로소 다니자와의 무색무취하던 세상에는 색깔과 향취가 생긴다. 인정욕구에서 벗어나자 자신을 얽매고 폭력에 동참하게 한 부조리의 사슬이 끊어진 것이다.

어느 곳이나 사람들이 모이면 그 중 더 인기 있는 이와 덜 인기 있는 이가 생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보이지 않는 계급도 형성된다. 더 인기 있는 것을 좇고 그것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러한 인정욕구로부터 파생하는 것들 중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도 많다. 혹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를 폭력을 살피고, 그 근원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