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징비록』에 대한 역사적·정치사적 배경과 저술의 가치
[책 속 명문장] 『징비록』에 대한 역사적·정치사적 배경과 저술의 가치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5.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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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유성룡은 정응태 무고 사건으로 탄핵을 받고 간인으로 지목되는 등의 정치적 비판으로, 자신이 겪은 전란의 참화보다 더 견디기 힘든 시간을 감내해야만 했다. (중략) 1598년 실각 이후 1607년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약 8년여의 시간은 그에게 전란으로 겪었던 어려움보다 더 견디기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유성룡의 내외적 위기가 『난후잡록』·초본 『징비록』을 저술한 이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55쪽>

「난중일기」에서 보이는 이순신과 유성룡의 관계 기사들을 분석해 보면 『징비록』에 실린 이순신 관계 기술이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이순신이 올린 장계를 통해 유성룡은 영의정·비변사 유사 당상으로 그의 전공과 전투 상황을 보고받았다. 이순신은 공적인 장계에 담기 어려운 원균의 비행이나 감정 등은 간찰을 통해 유성룡에게 토로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본다면 유성룡은 누구보다 이순신과 관련한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어떤 인물보다 이순신에 대한 전공과 역할을 충실히 기술했다.<87쪽>

초본 『징비록』과 『난후잡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서술 방식에 있다. 『난후잡록』은 사건별·주제별로 특별한 체재 없이 서술돼 있어, 임진왜란을 시기순으로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반면 초본 『징비록』은 편년체로 서술돼 있어, 임진왜란의 전개 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따. 이것은 유성룡이 『난후잡록』이 갖는 서술 체재 상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초본 『징비록』을 작성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137쪽>

유성룡과 『징비록』은 모두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선조조의 당쟁과 전란의 책임·학맥과 인적 관계망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의 유성룡 연구가 그를 불편부당하다는 측면에서 접근해 그의 역할만을 주목했다면, 『징비록』에 대한 연구는 전란을 반성적 차원에서 저술한 측면만을 강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징비록』 자서에 드러난 표면적 저술 의도의 이면에 담긴 저술 배경과 그것이 갖는 의미도 함께 파악해야만 한다.<235쪽>

『유성룡의 징비록 연구』
장준호 지음│카모마일북스 펴냄│268쪽│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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