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할 것 많으니 차라리 다 똑같이’... 이재명의 ‘재난기본소득’ 실효성 논란
‘고려할 것 많으니 차라리 다 똑같이’... 이재명의 ‘재난기본소득’ 실효성 논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3.26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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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세계 경제가 극심한 ‘돈맥경화’(돈이 돌지 않아 경제가 악화되는 상황)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비가 촉진돼야 돈이 도는데, 코로나 사태로 소비가 위축되자 소상공인과 기업이 타격을 입고, 이는 다시 ‘인력감축·무급휴직’ 등의 악순환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여러 나라가 ‘돈 풀기’(재난기본소득)에 나섰고, 국내에서는 광역자치구 중 경기도가 처음으로 ‘전도민에게 1인당 10만원 지급’ 카드를 들고 나섰는데, 대체로 취지에 동의하는 분위기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기도가 내놓은 지원안에 따르면 경기도민 1,236만5,377명은 4월부터 소득과 나이에 상관없이 1인당 10만원(지역 화폐)을 지급받는다. 재원 총액이 약 1조3,260억원에 달하는데, 경기도는 재난관리(3,405억원)/재해구호(2,737억원)/지역개발기금(7,000억원) 등에서 재원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사실 ‘재난기본소득’이란 재난이 해소될 때까지 기본소득을 지속해서 보장한다는 개념이라 일회성 ‘재난 지원금’에 가까운 이번 조처는 ‘구제’보다는 시장에 돈을 풀어 ‘돈맥경화’를 해소하기 위한 ‘시장활성화 정책’에 가깝다. ‘공돈’이 생기면 소비를 할 것이고 그럼 돈이 돌아 경기가 진작된다는 발상인 것. ‘재난 지원금’ 지급을 결정한 24개 지자체 중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일괄 지급하는 지자체는 네 곳(부산 기장군, 울산 울주군, 경기 여주시, 경기도)으로 그중 광역지자체는 경기도가 유일하다.

일각에서는 “그 돈으로 실직했거나, 무급휴직을 당한 사람 등 정말 어려운 사람을 오랜 기간 돕는 게 낫지 않냐”고 지적하지만, 경기도 측은 ‘소비가 촉진되면 자연스레 경기 회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개념은 미국 경제학자 폴 그루그먼이 처음 제안한 것으로 ‘헬리콥터 드롭’(‘헬리콥터에서 돈을 살포한다’는 의미)이라 불리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전 국민에게 1,000달러(약 123만원)를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고, 홍콩은 1만홍콩달러(약 159만원), 싱가포르는 300싱가포르달러(약 26만원), 일본은 지급안을 사실상 확정하고 지급액(예상금액 약 14만원)을 고심하는 중이다.

돈 풀기가 경기 부흥을 이뤄낸다는 건 어느 정도 검증된 경제이론이다. 실제로 미국은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2008년 7,000만 가구에 665억달러(약 82조원)의 세금을 환급해줘 상당한 수준의 경제 진작 효과를 거둔 바 있다. 다만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소비환경(사회적 거리두기)이 위축된 상황인지라, 그 환경이 바뀌기 전까지 기대하는 수준의 소비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또 돈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효과가 감소하는데, 과거 일본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 직후인 2008년 국민 1인당 평균 1만2,000엔(약 14만원/총 2조원)을 지급해 경기 부양을 꾀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소비 대신 저축을 택하면서 해당 금액의 1/3도 시장에 풀리지 않아 큰 효과를 보지 못한 바 있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경기도는 유효기한 3개월짜리 지역 화폐나 상품권을 지급할 예정이지만,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는 한 생필품이나 방역용품에 소비가 집중돼 실효성 없이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진=장덕천 부천시장 SNS]
[사진=장덕천 부천시장 SNS]

실제로 장덕천 부천시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소비패턴이 변하지 않는 한 (장사가) 잘되는 곳만 더 잘될 것”이라며 “부천 인구 87만명에게 10만원씩 지급하는 것보다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2만명에게 400만원씩 주는 게 낫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부천시를 포함해 경기도 내 네곳의 지방정부가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일괄 지급에 동의하지 않고 있으며, 경기도는 이들 지방정부는 제외하고 지급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막대한 자금을 풀었으나 실효성은 적고 논란만 가중시킬 우려가 있는 현 상황은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전 국민 대상 현금지원에 청와대가 난색을 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마냥 방관할 수도 없어 청와대는 2주 내로 전 국민은 아니지만 최대한 많은 인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지급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철학자 필리프 판 파레이스 박사는 책 『21세기 기본소득』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다양한 일자리와 여러 시장의 기회들이 대단히 불평등한 선물들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만 한다. 일자리와 시장 기회들, 수많은 요인이 복잡하고도 알 수 없는 조합으로 결합되면서 사람들에게 아주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물들 전체를 모두에게 공정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개인의 사정을 다 참작하면 고려해야 할 것이 많으니 일괄 지급이 공평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생각과도 같아 보인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세금 내는 사람 따로 있고, 혜택 보는 사람 따로 있게 내면 세금 내는 사람이 저항한다”며 “취약계층만 지원한다면 세금 내는 사람이 혜택에서 제외된다. (이건) 그야말로 과거의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지급 소식이 전해지자 경기도 주민인 A씨는 “가족이 네명이라 40만원이 생긴다. 사실 코로나로 딱히 피해 본 것도 없고, 직장도 영향이 없는 편이다. 마스크 구매하느라 돈이 들긴 했지만, 40만원까진 아니었는데, 아무튼 (돈을) 준다니 고마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반면 피아노 학원 강사인 경기도 주민 B씨는 “학원이 문을 닫아 몇 주째 무급휴가를 보내고 있다. 이런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몰라 두렵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처지의 두 사람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하는 게 과연 ‘공평’하고 ‘공정’한 처사일까? 섣불리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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