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소설들의 ‘빛나는 문장들’
[니가 사는 그책]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소설들의 ‘빛나는 문장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3.18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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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소설의 인기는 그 소설에 담긴 문장들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독자 한명의 가슴을 뛰게 한 문장은 또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베스트셀러 소설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이도우), 『아몬드』(손원평), 『대도시의 사랑법』(박상영), 『작별인사』(김영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은 국내 작가들의 소설이 돋보인다.

“마음 약한 듯해도 어쩌면 그녀가 명여 이모보다 강한 사람일지 모른다 싶었다. 잘 웃고 잘 울 수 있다는 건 그런 거니까.”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中)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해원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과의 불화로 인해 충동적으로 미술학원을 그만두고 명여 이모가 운영하는 펜션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명여 이모와 갈등으로 무작정 은섭이 운영하는 독립책방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해원이 만난 수정. 그는 해원과 달리 잘 웃고 또 잘 우는 사람이다. 그리고 해원은 그것을 ‘강함’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잘 웃고, 잘 울지 못했던 이유는 잠시 스쳐 갈 감정을 대면하기가 두려워 그저 회피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독자는 생각하게 된다. 감정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란 무엇인가.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아몬드』 中) 『아몬드』의 화두는 ‘구원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라도 구원의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가’이다. 열여섯 살 때까지 소년원을 전전했으며, 남에게 상처 주는 것이 강하다고 믿는 곤이와, 엄마와 할머니가 공공장소에서 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하고 칼에 찔릴 때조차 무감각했던 윤재. 소설은 이 두 소년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고 낭떠러지에서 건져 올린다. 그리고 결국 인간에게 희망을 찾지 못했던 독자마저 구원한다. 

“그래서나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다고. 나는 그 말이 좋아서 계속 입 안에 물을 머금듯이 되뇌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도시의 사랑법』) 과거 연인 규호에게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고백한 주인공이 그때 왜 자신을 받아줬느냐고 묻자 규호가 답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 퀴어 연작소설은 그 자체로 혐오의 대상일 수 있지만, 작가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 어떤 사랑보다도 큰 사랑을 그려낸다. 하나로 연결돼 빛나는 네 편의 소설들은 진정 큰(大) 사랑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 인간은 속아 넘어가는 것은 싫어하지만 마법에는 너그러워. 아니, 아주 즐거워하기까지 하잖아.” (『작별인사』 中)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열일곱 살 철이는 일련의 사고로 인해 자신이 인간과 99.9% 비슷한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인공지능 로봇들과 만나게 된다. 철이를 무척 아끼던 철이의 제작자이자 아버지는 인간이 로봇들에게 설 자리를 빼앗기고 철이가 점차 자유에 눈을 뜨게 되자 정신을 놓고 철이를 파괴하려 한다. 『작별인사』는 이렇게 인간이 갖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상기하며 독자에게 질문한다.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존재의 등장이 필연이라면, 당신은 그들에게 당신의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가. 없다면, 그 모습은 상당히 볼품없지 않을까.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中)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표제작에는 가족들을 수만 광년 떨어진 어느 행성에 보내놓고 정작 본인은 그 행성에 가지 못하게 된 한 할머니가 등장한다. 우주여행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새로운 운항 기법이 개발됐으나, 과거의 운항 기법과 달리 그 기법은 할머니의 가족이 사는 행성에는 닿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기존의 운항 기법(빛의 속도보다 조금 느린)으로 가족들이 사는 행성에 가고자 하지만 우주여행 회사들은 높은 비용을 문제로 거절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할머니의 질문은 왠지 “우리가 끊임없이 진보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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