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서는 요리, 책은 슬로 푸드” 이욱정 PD in ‘2019 서울국제도서전’
[인터뷰] “독서는 요리, 책은 슬로 푸드” 이욱정 PD in ‘2019 서울국제도서전’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6.21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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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이욱정 PD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도서전에 조리복 입은 셰프가 돌아다닌다. 전무후무 한 일이다. 책과 음식이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지난 19일 개막한 국내 최대 책 축제 ‘2019 서울국제도서전’(이하 도서전)은 빵 냄새가 솔솔 풍기는 파격이었다. 대전의 인기 빵집 ‘성심당’ 직원들은 “튀김소보로 드시러 오세요”를 외쳤고, 곳곳에서는 커피에 파스타에 토스트에 심지어는 궁중음식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수백개의 도서전 부스 중에 가장 큰 것도 요리 부스였다. 보라색 네온사인으로 ‘단! 짠!’ ‘요리인류’라고 적힌 부스.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에서 앞치마를 두른 이욱정 PD가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강연자로만 온 것이 아니었나?’ 그가 직접 만든 에그샌드위치를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슈베르 마르톤 헝가리외교부 차관보 등이 맛있게 먹었다. 도서전 관람객들에게도 잘 팔리고 있었다. 

“풍요의 시대, 음식은 이제 단순히 배를 채우는 생존의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은 다양한 감각을 체험하고 그것을 먹는 나를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음식은 육체를 위한 연료에서 마음을 위한 기호로, 요리의 행위는 땀내 나는 노동에서 신나는 놀이로 변환 중이다. 우리는 노동에서 놀이로, 또는 살기 위해 먹는 것과 즐기기 위해 먹는 것으로의 변화를 짠맛과 단맛의 대결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이욱정, ‘단/짠’ 中>   

부스 앞에 적힌 글을 읽고 주변을 돌아보니, 음식이 주가 아니었다. 곳곳에 요리책, ‘배달의민족’이 펴내는 <매거진 F> 등 식문화 관련 잡지, 음식과 인간을 엮은 인문학책. 20일 출간된 이욱정 PD의 책 『치킨인류』도 있었다. 그제야 음식과 책의 연결고리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다. 음식은 거의 준비가 됐고, 곧 점심시간, 이욱정 PD가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 19일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슈베르 마르톤 헝가리외교부 차관보,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이 이욱정 PD가 만든 애그샌드위치를 맛보고 있다.

Q. 강연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직접 땀을 흘리며 요리를 하고 있다. 무엇을 팔고 있나?

A. 여러 가지 음식과 서적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판매가 주된 목적이라기보다는 책과 요리라고 하는 테마를 가지고 다양한 강연, 요리시연, 토크쇼 등의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저와 함께 여러 작업을 하고 있는 ‘배달의 민족'의 <매거진 F>와 함께 꾸민 공간입니다. 
책과 요리라고 하는 것이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요리가 발전하는 데 요리책이 굉장한 기여를 했고, 또 오래된 요리책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선조들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리와 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 관계를 이번 도서전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합니다. 

Q. 이번 부스의 기획의도가 있나?

A. ‘단짠’입니다. 단맛과 짠맛은 모두 매력적인 맛이죠. 그런 맛을 한번 상징화하려고 해봤습니다. 우리에게는 생존을 위한 음식이 있고, 또 즐거움을 위한 음식이 있잖아요. 과거 음식은 맛보다는 생존을 위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놀이를 위한 것이 됐습니다. 큰 변화가 있었고, 그것을 단맛과 짠맛이라는 ‘맛’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또, 저희 부스 앞에 마련된 복싱링에는 단맛과 짠맛의 대결이 표현돼있는데요. 단맛과 짠맛의 무한매치는 쾌락과 생존, 에로스와 로고스의 대결, 혹은 모순 가득한 인생의 숨은 맛의 상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강연자로는 도서전 첫 참가다. 이번 도서전에 대한 감상은?

A. 도서전은 작년보다 훨씬 성황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시대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책에서 멀어지고 있고, 독서인구가 줄고 있다는 말이 많잖아요. 그런데 이런 도서전의 열기를 보면, 오히려 사람들이 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요즘 다양한 분야의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잖아요. 특히 요리 분야 책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는데요. 단순히 먹거나, 먹는 음식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요리사의 이야기, 음식에 담긴 우리 사회의 이야기 등을 책을 통해서 만나고자 하는 니즈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이욱정 PD의 신간 『치킨인류』

Q. 『치킨인류』, 신간이 굉장히 독특하다. 소개를 해준다면…

A. ‘배달의민족’과 함께 제작했던 다큐멘터리 ‘치킨인류’의 어떤 탐험기예요. ‘닭이라고 하는 야생의 새가 어떻게 인간의 가축이 돼서, 오늘날 전 세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먹는 존재가 됐느냐’는 것을 인류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는, 탐험해보는 그런 책이에요. 이 책에는 다양한 인류가 가지고 있는 닭에 대한 어떤 문화적인 이야기들, 요리뿐만 아니라 동물복지 등 윤리적인 이야기들, 생명에게 감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 동물의 가치를 존중해준 만큼 우리도 혜택을 받는다는 것 등 그런 여러 가지 층위의 이야기들을 담았어요.

Q. ‘이욱정의 서재는 주방이다’라는 인터뷰를 봤다. 이욱정에게 책은 무엇인가? 

A. 다른 사람의 생각 또는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의 생각, 느낌, 기억, 경험… 이런 것들을 냉동한 식재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행위는 마치 식재료로 어떤 요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독서는 책을 자기의 요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인스턴트 푸드가 범람하듯 인스턴트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데요. 책은 어떻게 보면 슬로 푸드(Slow food)입니다. 잘 만든 책은 한 권이 완성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것을 읽고 소화하는 데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반면에 인스턴트 콘텐츠, 예를 들어 인터넷의 3분, 5분짜리 콘텐츠들은 인스턴트 푸드처럼 당장 입에는 달지만 많이 먹고 나면 기분이 허합니다. 콘텐츠의 세계도 음식의 세계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책 한 권을 읽으면 여러 편의 짤(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 파일)을 봤을 때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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