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아날로그 육아의 즐거움 下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아날로그 육아의 즐거움 下
  • 스미레
  • 승인 2018.11.19 11:0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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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자전거로 유치원에 간다. 나 역시 아이가 내보낸 뽀얀 입김을 뒤쫓으며 페달을 밟는다. 더러 아빠 차를 타기도 하는데, 그 다음 날이면 아이도 나도 빠르고 편한 차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아이는 안다. 자전거를 타면 강아지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고 이슬 맺힌 낙엽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내겐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이런 모습이다. 디지털은 빠르고 완벽하지만 재미가 없다. 반면 아날로그는 느리고 불완전하지만 감정과 스토리가 깃들어 즐겁다. 회상의 여지가 많은 쪽은 역시 아날로그 쪽. LP판과 연필의 판매량이 늘어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테다.

디지털은 쉽다.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리모컨이나 스마트 폰을 좋아한다. 그러나 아날로그 방식이 습관이 되게 하려면 부모가 시동을 걸어 줘야 한다. 쉬운 것,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지면 책 읽는 즐거움, 스스로 조작하고 사고하는 방법 등은 점점 갖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어릴수록 느리고 번거로운 것들을 아빠엄마와 재미있고 따뜻하게 경험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천천히 함께 걷는 즐거움을 이때 아니면 언제 누려보겠는가.

세상이 편해질수록 스스로 뭔가 하고자 하는 마음과 어려움을 참아내는 힘도 필요하다. 디지털에 모든 걸 의존할 수는 없다.

# 품안 독서, 손 편지. 기워 입히는 옷...아날로그 육아의 맛과 멋

아이가 일곱 살이 된 지금도 나는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준다. 혹자는 ‘읽기 독립’을 해야 할 때라지만, 개의치 않는다. 아이는 언젠가 읽기 독립을 할 것이다. 책을 들고 팔랑팔랑 뛰어오던 모습, 따뜻하고 동그란 감촉, 달콤한 아이 냄새를 추억하며 그리워 할 사람은 나다. ‘품안 독서’도 한 때일 테다.

말로는 전달이 어렵거나 꼭 하고 싶은 말은 편지로 적는다. 쪽지를 유치원 가방에 넣어두기도 한다. 아이와 말없이 노트를 펼치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 넘기기도 한다. 사각사각 연필소리와 새근새근 숨소리에 짝꿍과 노트를 펼치고 잡담을 나누던 중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연필로 그린 단조로운 이모티콘에도 아이는 와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나도 사랑해’

일곱 줄 써주고 다섯 글자 돌려받지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아이의 유치원 준비물은 지퍼백 대신 이모가 만든 주머니에 담아준다. 아이는 여러 개의 디자인 중 그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도 하고, 직접 빨아 말리기도 한다. 지퍼백과는 대하는 마음부터가 다르다. 구멍 난 바지는 외할머니 몫이다. 할머니만의 감각으로 기워 주시니 세상에 하나뿐인 명품이다.

#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책육아

우리 집에는 유명한 교구나 전집이 없다. 하지만 눈 닿는 곳에 수백 권의 카탈로그가 있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아이에게 인터넷 창을 열어주는 대신 함께 카탈로그나 책을 본다. 조금 느리고 답답해도 책에서 찾고, 책으로 알아간다.

사실 나부터가 그렇다. 인터넷 레시피 보다 빛바랜 요리책이, E-북 보다 종이책이 더 편하다. 책을 꺼내는 행위, 책장을 넘길 때 손끝에 닿는 종이의 감촉, 바스락하는 소리 등 여러 감각이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나 보다.

책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에 동의한다. 맞다. 책은 남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책과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독서는 독자와 저자가 페이지를 통해 관계를 맺는 것. 디지털 시대에도 책은 남아서 좋은 스승이자 친구가 될 테다. 다정히 오래오래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정보력보다 사고력’ 같은 말은 차치하고서라도.

# 시계, 달력, 자연의 때

숲 속으로 이사 와 달게 들인 습관은 자연의 변화와 때를 관찰하는 것이다. 토마토를 키우던 첫 해에 아이는 언제 토마토가 열리느냐 성화였지만,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때가 되면 열매가 맺히고 익는다는 걸 알았다. 꽃을 보며 열매를 채근하지 않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는 시계를 좋아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숫자와 시침, 분침이 있는 아날로그 시계에 호기심과 애정을 가졌고, 읽고 싶어 했다. 집안 곳곳에 아날로그 시계가 있는 이유다. 친정에는 120년이 넘은 골동품 시계가 있다. 내가 아기 때부터 함께 해 온 시계이다. 이틀에 한 번씩 태엽을 감아주고 시간을 맞춰줘야 한다. 매 시 정각이면 울리는 종소리를 끌 수 있는 방법도, 그 흔한 알람 기능도 없다. 아이는 그 낡은 시계를 좋아한다.

시계를 작동시키기 위해 드는 수고로움에 기꺼이 손을 보탠다. 부모님은 아이가 오는 날이면 태엽을 감아놓지 않고 기다리신다. 아이는 시계 밥을 주며 뿌듯하다.

내 손을 놀려 무언가를 ‘살린다는‘ 생각, ’먹인다는‘ 느낌은 착각일지언정 책임감과 애정을 갖게 한다. 태엽이 달린 핸드폰이 나온다면, 나도 핸드폰과 정이 좀 들려나.

달력도 마찬가지다. 식탁 위에는 작은 달력이 있다. 아이와 나는 아침마다 달력을 보며 오늘이 며칠인지, 이번 달이 얼마나 남았는지 혹은 챙겨야 할 일정은 무엇인지 확인한다. 24절기를 짚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며칠 전 아이는 창문 앞에서 “엄마, 오늘 입동이예요. 조금씩 겨울 냄새가 나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여름 내 호박이며 가지를 주렁주렁 매달던 집 앞 텃밭이 조용하다. 마당 벚나무는 홀홀히 단풍을 떨구었다. 성큼성큼 자라던 부추의 자람이 더뎌졌고, 방울토마토는 마지막 수확을 마쳤다. 한 계절, 그토록 부지런히 열매를 맺던 그 안간힘을 아이는 알고 있다.

창밖으론 매일 조금씩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해가 이울면(1) 달이 뜨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 이렇게 어김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편안해진다.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에 예측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절기를 통해 틀림없는 자연의 시간과 선인들의 지혜에 감탄한다. 아이와 나는 오늘도 달력과 마당을 보며 지금 우리가 1년 중 어디를 통과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아이로부터 올해 달력이 2장 남았다는 말을 들었다. 조급해지는 대신 천천히 연말을 준비하며 올해를 정리해야겠다. 겨울이 코앞이다. 따뜻한 실내화를 꺼내고 차로 끓일 옥수수를 구입해야겠다.

▲ 단어설명
이울다(1) : 해나 달의 빛이 약해지거나 스러진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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