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의 일부가 작품의 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톰 하디 주연의 영화 ‘베놈’(수입/배급 소니픽쳐스)이 지난 3일 개봉했다. 개봉일 관객 수로는 역대 마블 캐릭터가 나오는 솔로무비 중 최고 오프닝을 경신했지만, 인기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상영관을 나온 관객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4일 영화진흥위원회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베놈’은 개봉일인 지난 3일 하루에만 74만546명의 관객을 불러 모아 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역대 마블 솔로 무비 중 최고 기록으로, 2위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72만7,949명)와 ‘블랙 팬서’(63만481명) ‘스파이더맨: 홈커밍’(54만5,302명)을 뛰어넘는 수치다. 같은 날 개봉한 ‘암수살인’의 관객 수는 43만9,221명이었다. ‘덩케르크’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인셉션’ 등에서 열연한 명배우 톰 하디와 마블 영화 중에는 드문 ‘빌런 히어로’(악당이면서 동시에 영웅인 캐릭터)의 등장에 개봉 전부터 관객들이 높은 기대감을 나타낸 결과다.
그러나 지난 3일 왕십리CGV, 오전 10시 상영관 안팎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영화 중간에 웃음을 터트리거나 놀라는 관객은 드물었다. 영화가 끝난 후 상영관 출구 앞에서는 “재미없다” “기대와 많이 벗어났다” “전개가 이상하다” “더 잔인했어도 될 것 같다” “볼 게 톰 하디 얼굴밖에 없다”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캐릭터가 어중간하다’는 평이다. 예고편에서 사악한 악당 이미지를 풍기던 ‘베놈’. 그 실체는 ‘어중간한 히어로’였다. 정체성이 마치 물 조절을 실패한 인스턴트커피 같았다. 관객들이 예고편을 보고 기대한 ‘베놈’의 모습은 영화 ‘다크 나이트’의 싸이코패스 테러범 ‘조커’나 영화 ‘쏘우’에서 기괴한 방법으로 살인을 즐기던 연쇄살인마 ‘직쏘’같은 철저한 ‘악당스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베놈’에서 악역을 맡은 우주 괴생명체 ‘베놈’은 겉모습만 악당이지 악한 일은 지양하며 선한 일만 하고 다닌다. 그 선한 일이란 것도 사실 어중간해, 스크린에 비친 ‘베놈’은 완전한 히어로도 아니게 됐다. 전혀 악당답지 않게 약한 마음, 로맨스는 물론 브로맨스의 향기를 풍기는 모습은 마치 ‘쿨한 척’하는 조연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물론 관객들은 ‘베놈’의 악당이면서 악당이 아닌 반전의 모습도 한편으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전도 캐릭터가 철저하게 악한이었을 때에야 가능하다. ‘베놈’은 애초에 반전을 줄 만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영화 초반부 ‘베놈’이 지구 생명체의 몸에 기생하며 해당 생명체를 파괴하는 등 점차 악당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 보였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악당의 전제 조건은 ‘악한 본성’이지만, ‘베놈’은 단지 생리적으로 배가 고플 뿐 본성이 악하지는 않다. 심지어 주인공 톰 하디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나도 내 고향에서는 루저다”는 식의 공감을 하며 주인공의 연애까지 돕는다. 한 관객은 “악당을 보러왔는데 어째 ‘베놈’ 얼굴이 점점 귀여워 보인다”고 말했다. ‘빌런 히어로물’을 표방하는 이 영화에서 ‘빌런’은 없었다. 비슷한 예로 ‘슈퍼 빌런’들을 모아 놓은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들 수 있겠다. 이 영화 역시 자칭 악당이라는 주인공들의 정체성이 대단히 모호했다. 제작에 약 1953억원이나 들어갔지만 우리나라 관객은 180만 명이었다. 진정한 악당이 없는 이 영화에서 유일한 승자는 마고 로비였다.
‘베놈’이 악당답지 않게 된 이유로 ‘15세 관람가’를 탓하는 이도 있었다. 영화가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피하고자 잔인한 부분을 대거 편집했다는 말이 나온다. 한 전문가는 “추후 제작될 ‘베놈’ 시리즈에 스파이더맨을 등장시키려는 조치”라고 해석한다. 한 관객은 “청불(청소년 관람 불가)로 했으면 명작이 됐을 영화”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인물의 감정선을 고려하지 않은 ‘급전개’도 영화를 조잡하게 만든다는 평이다. 초반부의 갑작스러운 해고는 그렇다 치자. 어느 건물 옥상에서 도시의 야경을 보게 된 누군가는 갑자기 지구를 지키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대략 3초만에 감정선이 바뀐 것이다. 관객은 뜬금없는 ‘급전개’에 당황스럽다. 적어도 3번 이상 감정이 변화될 계기를 마련했어야 했다는 평이 나온다.
조연들의 개성을 살리지 못한 것도 흠으로 남는다는 평이다. 맛깔나는 조연은 영화의 고명 역할을 한다. 그러나 충분히 활약해야 할 톰 하디의 전 여자친구(미셸 윌리엄스)와 의사 레이드 스콧은 감초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쿠키영상”이라는 관객들이 많았다. 실제로 3일 포털사이트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는 ‘베놈 쿠키영상’이 상위권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관객들이 쿠키영상에 관심을 표한 이유는 단순히 쿠키영상에 등장하는 빨간 머리 죄수가 누군지 궁금해서였다. 한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이 쿠키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은 ‘베놈’처럼 괴물로 변하는 악당 ‘카니지’라고 한다. 관객들은 단순히 이 ‘카니지’에 대해 몰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