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치킨, 먹어선 안 될 음식?... 커지는 ‘동물권’ 주장
보신탕·치킨, 먹어선 안 될 음식?... 커지는 ‘동물권’ 주장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8.08.13 14:48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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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동물권 활동가들이 개도살 금지를 호소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동물은 고통을 받거나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동물권)를 지닌다는 동물보호단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물권은 막연히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보다 폭 넓은 개념으로 경우에 따라 동물식용을 금지해야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지난 7일 다수의 동물권 활동가들은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개식용 금지 입장을 정확하게 밝히고 개·고양이 도살 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지난 6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률이 정한 가축의 도살만 허용하고 개·고양이 도살은 금지’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것과 관련해 “가축이 아닌 동물의 도살을 막는 것은 국민 보건과 건강을 위해 보편타당한 법안”이라며 “개 농장에서 자행되는 동물학대를 청산하고, 개고기 유통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2일에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 시험’ 현장에는 동물권 활동가들이 난입해 기습적으로 피켓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이들은 “닭도 생명이다. 닭을 먹지 말라”며 “치믈리에(치킨 맛 감별사 시험)라는 이름으로 닭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에 분노한다”고 외쳤고, 이어 25일에는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배달의민족은 '치믈리에'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키며 동물의 생명을 유희로 전락시키고 있다”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채 이윤만 극대화하려는 속내를 내보이고 있다”고 거듭 비난했다. 당시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닭 분장을 하고 피투성이가 돼 쓰러지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동물권으로 인한 논란은 정치권에서도 나타난다. 지난달 26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정되자 동물보호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동물권단체 케어,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동물구조119 등의 단체는 이날 세종시에 위치한 농림축산식품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식용을 옹호하는 이 의원이 농식품부 장관이 된다면 동물복지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지명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앞서 이 의원은 “우리 농해수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반려보다는 팔아먹는 데, 잡아먹는 데 중점이 있는 거지”라며 “다른 위원회는 (동물을) 보호하는 게 중요하지만 우리는 돈 되는 것이 중요하지, 잡아먹고, 팔아먹고” 등의 발언으로 동물보호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당시 논란이 일자 이 의원은 “반려동물 문화를 비하하거나 동물생명 존중 가치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며 “정제되지 못한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은 지난 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식용을 옹호하는 이개호 의원의 장관 임명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등 지명 철회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동물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 상황을 뒷받침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6월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에 의뢰해 진행한 ‘개식용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전체 1006명 중 개식용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은 157명(15.7%)에 불과했으며 599명(59.6%)이 식용 개고기에 부정적인 의사를 표했다. 그중 68.2%는 ‘개식용 산업이 쇠퇴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또 설문에서 개고기를 먹어봤다고 응답한 525명 중 74.4%가 ‘주변의 권유로 먹어봤다’고 밝힘에 따라 일부 동물보호단체는 ‘개식용 금지’와 함께 ‘개식용 권유 금지’ 운동을 병행할 방침이다. 

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은 최근 갑자기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근대 이전에도 윤리적·종교적 관점에서 동물 보호 개념이 존재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나 동물로 다시 태어나는 윤회설을 믿었기에 동물을 존중할 것을 주장했고, 일부 문화권에서는 특정 동물을 신성시하며 살생을 금하기도 했다. 『성경』에는 황소와 그보다 힘이 약한 나귀가 함께 쟁기를 끌게 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있어, 동물을 도구로만 생각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용이었지, 인권에 상응하는 정도의 동물권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동물은 도덕적 사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인격에게 부여되는 권리를 부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물권이 힘을 얻게 된 데는 미국 철학자 톰 리건(Tom Regan)과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역할이 컸다. 톰 리건은 “인간과 동물이 근원적으로 평등하다”며 “인간은 동물을 존중해야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고, 피터 싱어는 책 『동물 해방』에서 “동물도 지각 · 감각 능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보호받기 위한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며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인간 이외의 동물도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라고 밝혔다. 이후 이들 주장에 동의하는 동물보호단체가 ‘동물권’을 중시하는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동물보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 그런 와중에 캐나다 철학자 윌 킴리카(Will Kymlicka)는 ‘동물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동물권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데는 동물과 인간 간에 정서적 교감이 깊어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논문에서 반려 동물을 기른 경험이 동물권 옹호와 연관되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확인됐으며 특히 공감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 동물권 옹호 대열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개식용 반대 여론이 커져가고 있지만 아직도 여름철이면 유명 개고기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특히 전국에서 최초로 보신탕을 판매해 ‘개고기 원조마을’로 알려진 충남 서천군 판교면 현암리 일대에는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몰려들고 있다. 현암리에서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A씨는 “개식용 반대 여론에도 개고기를 찾는 사람은 여전하다”면서 “개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다면 돼지고기나 쇠고기도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7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동물보호단체의 기자회견에 맞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대한육견협회 회원들 역시 “농경사회였던 동양에서 개식용은 고유의 식문화”라면서 “(동물보호단체가) 개사육인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고유문화를 배척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물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견해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향후 어떤 주장이 힘을 얻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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