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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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18.07.2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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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옷차림새도 사회적 경쟁력인가보다. 항간에 ‘베스트 드레서’ 라는 말이 회자 될 정도니 옷이야 말로 입는 사람의 미적 감각은 물론 경제, 교양, 성품 등을 나타내는 척도임이 분명하다. 오죽하면 옷이 날개란 말도 있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고구려 건국 신화를 살펴보면 동부여를 탈출한 주몽이 모둔곡(毛屯谷)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세 사람을 만난다. 그들은 각자 삼베, 장삼, 수초 옷을 입고 있었다. 이를 보고 주몽이 그들 이름을 물으니, 삼베 옷 입은 이는 재사(再思)라 하고, 장삼 옷 입은 이는 무골(武骨), 수초 옷을 입고 있는 이는 묵거(黙居)라고 했다. 그러나 성은 밝히지 않았다. 주몽이 이들에게 재사에겐 극 씨(克氏), 무골에겐 중실 씨(仲室氏), 묵거에겐 소실 씨(少室氏)로 성을 붙여주고 “내가 천명을 받들어 나라를 세우려 하는데, 보배로운 사람들을 만났으니 이는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리라” 하고 각자의 재능에 맞는 일을 시켰다. 주몽은 그 당시 세 사람이 입은 옷을 보고 그들의 신분과 성품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에 따라서 건국에 필요한 역할을 나눠 맡겼다는 옷에 얽힌 고사(古史)만 살펴봐도 옷차림새만으로도 신분 및 개성 등은 물론 인품도 대략 짐작 할 수 있다고 하겠다.

어렸을 때는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비록 검소한 옷이라도 깨끗이 빨아 단정하게 입으면 좋은 옷차림이라고 배웠다. 이런 교육에 의해서일까. 평소 화려하고 값비싼 옷을 즐겨 입지 않는다.

얼마 전 백화점 근처를 지나치다가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나를 대하자마자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오는 길이라며 손에 든 몇 개의 쇼핑백을 자랑스레 열어 보인다. 그 안을 힐끗 들여다보니 고운 색상의 옷가지들이 잔뜩 들어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쇼핑백의 옷을 꺼내 내 앞에서 펼쳐 보이기까지 한다. 원피스 한 벌에 50만원을 줬다고 하고 어느 상의는 명품관에서 구입해 100만원을 호가한다고 했다. 지인은 자신이 나이가 들다보니 이젠 값비싼 옷을 입어야 품위가 있어 보일 듯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옷을 사 입는다는 부연 설명까지 곁들인다.

그녀의 말에 갑자기 입맛이 썼다. 나이가 들수록 연륜에 맞지 않는 옷보다 화사하고 깔끔한 옷차림이 돋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이 때문에 비싼 옷을 입어야지만 기품 있어 보인다는 말은 왠지 이치에 닿지도 않는 말 아닌가. 과연 그럴까? 아무리 자본주의의 꽃이 소비라고 하지만 명품을 걸치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잖는가. 겉치레보다는 내면이 무르익어야 겉모습도 격조 있어 보이는 법이다.

아무리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했다고 해도 평소 언행이 천속하면 겉만 번지르르한 속 빈 강정이 아니던가. 진정한 명품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 동시대를 풍미했던 세계 최고의 미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오드리 헵번은 참으로 상반된 모습이었다. 알코올 중독, 여덟 번의 결혼 등 엘리자베스는 지난날 명성과 달리 추하게 늙었지만 오드리 햅번은 품격 있는 연륜을 쌓고 있었다. 유니세프 특별 대사로 아프리카, 동남아 등 후진국의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돌본 오드리 햅번이 아니던가. 그녀를 영원히 우리 기억에 남게 한 것은 영화 ‘로마의 휴일’이 아니라 전쟁과 기아의 아프리카에서 보내던 노년에 이른 그녀의 주름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때 오드리 햅번은 자신의 젊은 날보다 그 모습이 더 빛나고 아름다웠다.

마음의 고갱이가 올바르게 가슴에 꽉 차 있는데 화려하고 값비싼 옷, 명품이 굳이 필요할까. 옷이란 어찌 보면 자칫 허울일 수도 있잖은가. 진정한 명품의 삶은 겉으로 드러나는 면모가 전부는 아니다. 본질이 반듯하고 실체가 정(正)하고 깨끗해야 할 것이다.

성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대체로 이런 내용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인간은 지극정성으로 참을 공경하면 오래 살고 나태하고 게으르면 반드시 요절하며 근검하면 장수하고 헛되이 탐욕 하면 일찍 죽는다’가 그것이다.

건강한 심신으로 장수하고 싶고 자신의 명망을 제대로 지키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무슨 일이든 절제가 그 비법이 아닐까 싶다. 명품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것에 연연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명품으로 이끄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가 만난 여인을 대하며 불현듯 절제와 근로는 진실한 두 의사라는 프랑스 철학자 루소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인 일일까. 이로 보아 삶이 명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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