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로 데워진 마음의 오븐
번개로 데워진 마음의 오븐
  •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18.07.0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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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
도서관장>

[독서신문] 소소한 일이 때론 감동으로 다가와 가슴을 움직일 때가 있다. 어디 이뿐인가. 삶을 살며 무심코 지나칠법한 사사로운 일들이 어느 경우 삶을 전환시키기도 한다. 이로 보아 비록 사소한 일일지언정 허투루 볼일이 아니다. 즉 자칫 지나칠법한 아주 미미한 일들이 실은 중차대한 일로 증폭 돼 우리 삶을 빛나게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인생 성공을 꿈꾸고자 한다면 사소한 일일수록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매사를 철두철미하게 행할 때 생의 오점을 남기지 않는 법이다.

인간관계 또한 그렇다. 그토록 끈끈하던 관계가 와해 될 때를 눈여겨보면 언행이 큰 몫을 차지하기도 한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상대에겐 비수로 혹은 독(毒)으로 작용해 그토록 견고했던 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예가 허다하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작은 일이지만 공을 들이고 진정성을 다하는 이의 특징을 보면 대인관계 또한 원만하고 삶도 순탄하다. 이는 그의 높은 감성지수가 비결이라면 비결인 셈이다.

십수 년 전 만 해도 한 때 감성지수라는 말이 자주 회자 된 적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감성지수는 지능지수(IQ)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마음의 지능지수'를 뜻한다고 했다. 이는 미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골만의 저서 『감성지수(emotional intelligence)』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를 두고 필자의 개인적 생각을 부연한다면 이렇다. 세상은 점점 기계화돼 신속하고 편리해지지만 그만큼 인간의 마음 밭은 냉랭해지고 삭막해지기 마련이다. 이때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 등을 마치 자신 일인 양 느끼는 공감력, 자신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에게 느끼는 이타심 등이 곧 감성 지수의 본질 아닐까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본다. 이 마음 바탕엔 인간 정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 정신이란 즉 이타심 아니던가.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사회인으로서 갖춰야 할 미덕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세상인심이 각박할 땐 가슴에 따뜻한 정을 지닌 사람이 세기의 위인 못지않게 위대해 보이는 것은 어인 일일까? 마음이 넉넉하고 온기가 넘치는 사람은 타인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또한 남을 짓밟고 자신의 욕심 보따리를 챙기는 일도 행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은 꼭 사회적 신분이 높고 많은 것을 가진 자들만이 행하는 일은 아닌 듯하다. 빈자(貧者)도 얼마든지 타인을 배려하고 이타심을 갖출 수 있음을 깨닫는 기회가 있었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월드컵 축구 경기 실황 중계방송을 시청하며 통닭을 시켰다. 메뚜기도 제 철이라고 때마침 주문이 많이 밀렸는지 통닭 주문을 한지 거지반 1시간여 넘도록 배달이 되지 않았다. 월드컵 축구 경기에 정신이 팔려 통닭 주문 사실을 깜빡 잊고 있을 즈음 드디어 통닭이 배달되었다. 따끈해야 할 통닭이 포장지 촉감만으로도 미지근하였지만 별말 없이 값을 치르자 배달원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해 온다.

그러면서 나를 보고, “아주머니 배달이 늦어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아무 말씀 없으시니 오히려 제가 송구스럽군요. 통닭은 따끈할 때 드셔야 제맛인데 주문이 밀려 배달이 늦었습니다.” 라고 정중히 사과를 해온다. 뿐만 아니라 늦은 배달로 미안하다며 통닭값 2천 원을 할인해 주겠단다.

나는 배달원의 말에 그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봤다.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가 만약 통닭값을 할인해 준다면 그 돈은 청년이 대신 지급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그의 말을 극구 사양했다. 보아하니 아르바이트생 같았다. 무엇보다 통닭 배달을 제시간에 못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지닌 그 청년이 갑자기 훌륭해 보였다. 비록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지닌 청년의 성실성에 감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청년의 진정성 있는 말 한마디는 곱씹을수록 인상이 깊다. 청년의 언행이 안겨주는 잔잔한 감동에 문득 번개로도 충분히 두꺼운 바닥의 오븐을 데울 수 있음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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