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허용범 국회도서관장 "정보 '서비스'에서 나아가 정보 '창출'"
[인터뷰] 허용범 국회도서관장 "정보 '서비스'에서 나아가 정보 '창출'"
  • 이은광 기자
  • 승인 2017.12.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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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지원도 디지털 시대"…이문열 소설 강추

정치와는 무관한 자리처럼 보이는데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국회도서관장직이 그렇다. 제1야당 몫이다. 제1야당에서 사람을 추천하면 대체로 통과된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도서관 문외한이 온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말들이 터져 나왔다. 성명서 등 공세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자리 임자가 10월 11일 취임했다. 허용범 21대 국회도서관장이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와 조선일보 기자로 18년 근무했고 국회의장 대변인 등을 거쳤다. 기자 생활 거의 대부분을 국회에서 보냈으니 국회도서관이 물리적으로 낯설지 않다. 허 관장이 도서관 관련 문외한이라는 선입견을 깨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일간지 기자로서 팩트를 금지옥엽처럼 숭상했고 늘 귀를 열었고 권력을 감시했기에 기사 하나 글 한줄 엄중함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활자에 대한 원초적 감각이 근육처럼 작동하고 그 활자 감각은 데이터로 이어지고 데이터는 다시 4차산업혁명으로 뻗어간다. 거기에 입법지원이라는 국가적 서비스 마인드는 신경망처럼 얽혀서 동반한다.

허 관장은 독서신문이 연중 캠페인으로 진행하는 '전 국민 독서 캠페인-책 읽는 대한민국' 에 적극 동참한다고 밝히며 책 2권 추천을 부탁을 받고 기본 2권에 4권을 더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황제를 위하여』 등 이문열 작품,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이병주 『지리산』,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크리스토퍼 포터 『당신과 지구와 우주』,그리고 조너섵 밸컴의 최신간 『물고기는 알고 있다』다. 11월 말 국회도서관장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업무 파악은 많이 하셨나요. 각오나 포부를 들려주시죠
"취임하자마자 국정감사를 한 게 저에게는 다행이었습니다. 국정감사는 학생들이 학력고사 치르는 것과 비슷해서 단시간에 업무를 많이 파악하는 좋은 기회죠. 그리고 예산 심사가 쭉 있었습니다. 도서관 예산이 한 해에 450억 정도 됩니다. 그런데 요구한 것 중 꼭 필요한 예산의 일부분이 기재부 편성 단계에서 반영이 안 됐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살리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속도감이 느려진 측면이 있습니다"

예산 반영이 안 된 부분은 클라우드 시스템, 빅데이터로 불리는 지능형 융합분석 시스템, 그리고 우리 도서관이 가진 자료들을 DB화 하는 예산 등이라고 했다.

예산이 반영되지 않으면 일을 못하는 건 당연하다. 왜 허 관장이 디지털 작업(원문 DB구축)을 강조하는지 기자도 설명을 듣고야 알았다. 이 디지털 작업이 거대한 정보혁명의 문고리라는 것을.

- 디지털 작업이 왜 중요한가요?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양이 쌓이면 질로 변한다는 것인데. 도서관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문 DB구축이 2억 3천만 면을 넘어 어마어마하게 쌓이니까. 그렇지만 이 정보는 그동안은 단일한 정보로 이용됐어요. 각주 달 때도 몇 페이지 이런 식으로 냈잖아요. 이제는 수많은 정보가 쌓이다 보니까 정보들을 융합해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예컨대, 아직 구현하기 어렵지만 수억 개의 데이터, 언론 기사, 소셜 정보, 수많은 학술정보, 국회 안 의안정보들을 하나로 뭉뚱그리면 우리나라의 입법 과정은 사회적 공론화가 이런 단계에 오면 이뤄지는구나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개별적 정보들이 모여서 제3의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거죠. 디지털화 시대가 되기 전까지 상상할 수 없던 현상 아닌가요"

국회도서관은 책 600만권을 갖고 있다. 해마다 20만권이 늘어난다. 이 방대한 자료를 전자정보로 디지털화 하지 않으면 효용가치가 떨어진다. 무슨 책 어디에 꽂아놨다고 해서 도서관 기능이 끝난 게 아니다.

그래서 허 관장은 속이 탄다. "규칙에 맞게 서지정보를 등록하고 학술논문은 원문DB를 해야 합니다.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보다 원문 자체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죠. 3년째 해마다 17억원이 배정됐어요. 원문 DB 예산, 책 디지털화 하는 예산 합쳐서요. 그런데도 미구축량이 많아서 10억 증액 시켜달라 했는데 안 됐어요. 그러면 도서관이 도서관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국회도서관이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서관이 20세기적 도서관으로 남는 겁니다"

- 국회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역시 입법지원인가요?
"국회도서관은 입법 지원 기관입니다. 태생도 그렇고 법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모든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교양이든, 입법이든 필요에 의해서 국회도서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국회의원이 책 보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닙니까.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수많은 분석자료들을 선제적으로 수집해 드리고 있습니다.

A라는 법률이 논의되고 있으면 그쪽에서 요청하지 않아도 그에 대한 외국 사례 등 자료를 보고서로 보내드립니다. 국회도서관이 발행하는 종류만 10가지가 넘습니다. 의원이나 보좌진이 소득세 관련 자료 필요하다 하면 도서관의 석박사 연구원들이 수집해서 알려줍니다. 가장 신뢰성 있는 기관의 공식 자료를 수집해 만듭니다.  이를 회신 서비스라고 합니다. 1년에 5천 건 정도 됩니다. 의회정보실에서만 4000건 넘게 왔습니다. 국회도서관 직원이 317명인데 그중 절대 다수가 입법 지원 기능을 합니다"

- 국회도서관도 4차산업혁명 시대 도래를 맞아 변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디지털 혁명시대에 도서관도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으면 20세기적 도서관, 물리적 종이책 시대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필요조건은 충족시킬지 몰라도 필요충분조건은 안 되는 거죠.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고 서비스하는 것은 국회도서관 아니면 할 수 없어요. 그만한 역량을 갖고 있고, 인적 조직을 갖고 있고, 디지털화 준비도 돼있고, 그런 의욕을 충분히 갖고 있으니까요"

- 입법 당사자들인 국회의원은 책 많이 봐야 할텐데요
"올 2월 20일이 국회도서관 창립 65주년이었거든요. 그때 도서(단행본)를 가장 많이 빌려간 의원 그리고 실제로 와서 많이 본 의원을 선정했어요. 김도읍, 김한정 의원이 많이 빌려가셨고 이주영, 조경태 의원은 실제로 많이 와서 보셨어요.

많이 빌려간 책으로는 강원국 전 연설비서관이 쓴 『대통령의 글쓰기』,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이 쓴 『축적의 시간』,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장하성 청와대 정책수석이 쓴 『왜 분노해야 하는가 :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산업혁명』 등입니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도 많이 대출됐습니다"

- 부산에 국회도서관 분관을 만든다고…
"국회도서관 부산관의 주요 기능은 자료보존입니다. 내년 착공해서 2021년 개관하는 게 목표입니다. 자료보존관을 짓는 이유는 해마다 20만 권씩 책이 쌓이다 보니 (현 국회도서관으로는)수장능력에 한계가 있거든요. 분산 보관을 해야 합니다. 조선시대 서고처럼요. 그리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겁니다.

특히 부산관은 자료보존관으로 시작했는데. 책만 갖다 놓으면 창고밖에 안되니 개념을 발전시켜서 ‘라키비움’으로 하려고 합니다. 원래 보존 목적의 아카이브만으로는 공간이 너무 아까워 공공도서관 기능 넣고 뮤지엄 기능까지 넣는 겁니다. 이를 ‘라키비움’이 라고 하더군요. 부산관은 명실상부한 라키비움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 일반 시민도 국회도서관에 많이 오나요
"많이 오죠. 수험생은 거의 안 옵니다. 책 못 들고 들어 갑니다. 장서를 이용해야 합니다. 공부방처럼은 쓸 수 없고 그런 현실적인 공간도 없습니다. 열람실을 이용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2500명 정도 됩니다. 직접 방문자. 전자도서관 이용까지 하면 하루 5만명에 이릅니다. 밤 10시까지 개방. 퇴근하고 술 드시지 않고 책 보셔도 좋아요. 창문 너머로 한강 뷰가 아름답습니다. 개인 컴퓨터 다 쓸 수 있습니다"

- 책 안 읽는 시대. 종이책과 관련해서 한 말씀
"저도 애들 두 명을 키우는데, 솔직한 생각으로는 우리 때보다 더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문자로 된 정보의 소통량이 많아요. 활자와 문자로 된 정보를 습득하는 면에서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과거에는 고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책다운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어떨 때 보면 가벼운 책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제 시각에서는 아이들이 저희 때보다 정보를 습득하는 양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먼저 세대보다 매우 다양한 측면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책 많이 보셨죠?
"그렇게 많이는 못 봤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학교 공부, 시험 공부가 절대적이었으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그랬습니다. 대학 때는 법대를 다녔지만 고시 공부는 하지 않았어요. 일제 때 판검사 되면 독립운동하는 사람들 판결하고 죽이는 역할했던 것처럼, 민주화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언제 민주화가 될지도 몰랐고 판검사가 내키지 않았습니다. ‘잡학 독서’를 많이 했습니다"

허 관장은 책 2권 추천을 주문했더니 망설임 없이 대학생 정도의 세대에게 추천한다면서 이문열 소설을 첫 손에 꼽았다. 이문열의 모든 작품을 다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젊은 날의 초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거의 다 읽고 몇 번씩 읽었습니다.

이 분(이문열)은 순수문학이 아니라 그 시대 상황에서 사회를 고민하던 소설가입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보수적이고 우파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때 당시, 80~90년대에 이문열은 우상이었습니다. 수많은 좌파 서적, 우파 서적이 있었지만 이문열은 소설로 (이념을) 녹여내서 그 안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입니다. 그 청년들의 고뇌를 표현하고. 제가 겪었던 격동의 시대를 잘 담아낸, 균형 있고, 깊이 있는 책들. 이 책들 읽으면 사회에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또 한 권, 5~6년 전 읽은 책이라며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추천했다. 저자는 대표적인 진화론자로서 과학적 방법으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책이다. 허 관장은 이 책을 젊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로 "무턱대고 신을 믿기보다 회의(생각)해 가면서 읽을 것"을 주문하면서 "기성 체제나 인류가 만들어 놓은 지식 체계, 종교적 가치에 대해 너무 쉽게 순응하지 않기를 바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민하고 방황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게 젊은이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병주 『지리산』도 추천했다. "6.25 이후 빨치산 얘기긴 하지만 이병주 선생의 시각에 의해서 우리 사회가 처한 것들의 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리산' 주인공은 이병주 본인입니다. 10권짜리지만 나무, 계곡, 꽃 이름 하나하나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허 관장은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 일행을 열람실로 안내했다. 조용하고 안온한 느낌은 저녁이어서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수만 권의 책이 수만 가지의 향을 발하고 그 향은 바닥을 맴돌고 천장을 적시며 사람 폐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형광등 불빛이 깜깜한 한강을 응시한다. 여기는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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