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게는 품격과 권위가 있다. 고고한 척 해도, 우아한 척 해도 통한다. 사람이 절로 따른다. 반면 공주과(科) 사람은 따돌림 당할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친구도 정도가 심하면 등 돌리게 된다.
공주가 아닌 사람이 공주처럼 행동하고, 대우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춘기 소녀는 너나 할 것 없이 공주가 되고 싶다. 공주를 꿈꾸는 그녀들의 일부는 공주과처럼 행동한다. 홀로 잘난 척, 예쁜 척을 한다.
오랜만에 여고 동창들을 만났다. 기다리는 동안 설렘의 연속이다. 만나는 순간은 현실을 본다. 사춘기 소녀의 그 모습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가 피부 탄력이 줄고, 살이 찌거나 빼빼마른 체격의 아줌마들이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비율이 낮아지고,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탓인지 자기 목소리가 강하다. 배려 보다는 주장이 앞선다. 식사 주문 하나에도 우왕좌왕이다. 정리가 잘 안 된다. 손님 많은 점심시간임을 감안해 한 가지로 주문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그런데 한결같이 취향대로 주문한다. 밥이 나오기 전에 기본 반찬을 안주 삼기도 한다. 한 친구는 계속 부정적인 품평을 한다.
“짜다, 싱겁다, 덜 졸였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닌데…” 두부조림 맛이 대단해봤자 그게 그거 아닌가. 엄청난 비법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한 친구는 밑반찬부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식사와 함께 여러 명이 함께 먹는 탕이 나왔다. 친구들은 각자 탕을 작은 접시에 떠 맛있게 먹었다. 실제로 맛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친구가 “짜다”며 탕에 물을 붓는다. 자기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여러 명이 함께 먹는 탕에 컵의 물을 절반이나 쏟았다. 이 친구는 몇 해 전 만났을 때도 비슷한 행동을 했다. 오랫동안 보지 않아 잊혀진 그 날이 다시 떠올랐다.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습관은 성공을 부르기도 하고, 실패를 손짓하기도 한다.
친구의 행동에 밥맛이 떨어졌다. 공동체 의식이나 배려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짜고, 맵고, 싱거움을 그렇게 따질 거라면 차라리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세상 일이 입맛대로만 되지 않음을 모른단 말인가.
만남의 목적은 음식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교류다. 얼굴을 보고 싶고, 안부가 궁금해 만났다. 옛 추억에 빠지고 싶었다. 나와 너의 잘남이나 부족함을 떠나 우리의 공감대를 그리는 만남이다. 그런데 철없는 친구의 반찬투정에 귀한 시간 상당부분이 맹물을 부어버린 탕처럼 되었다.
아마도 그 친구는 스스로를 공주로 착각하는 듯하다. 사춘기의 사고나 행동 습성을 버리지 못한 듯하다. 남이 인정할 때 공주 같은 품격 여인 소리를 듣는다. 내가 아무리 외쳐도 공주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주과라고 외면 받는다.
세월은 모두를 평등하게 만든다. 늙어가는 것이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비슷하게 늙어간다. 그렇기에 허풍을 떨 필요도, 고고한 척 할 필요도 없다. 주위와 잘 어울리면 된다. 이것이 우아하게, 공주처럼 아름다운 중년이 되는 길이다.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에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는 말이 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는 뜻이다.
삼계(三界)는 천상계, 인간계, 지옥계다. 석가가 말한 유아독존은 본인이 아닌 모든 인간의 존귀함과 생명의 존엄성이다. 아, 중년이 되어도 유아독존의 소아적 감성에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
김 수 경 <수필가·수en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