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춘천옥 (6회)
소설 춘천옥 (6회)
  • 김용만
  • 승인 2007.11.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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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옥에서 일을 시작하고 한달쯤 지나서였다. 나는 매일 내 승용차로 능수엄마를 출퇴근시켰지만 그녀는 차에서 몸을 비틀 정도로 화툿방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어느 때는 차에서 내려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춘천옥 일을 그만두겠다며 고함을 치기도 했다.

단체손님이 많은 금요일이었다. 아무 말 없이 능수엄마가 대낮에 사라졌다. 나는 즉시 그녀네 집을 찾아가 남편과 시어머니를 데리고 산동네를 뒤졌다. 예상한 대로 판잣집 구석방에서 화투치는 그녀를 잡아 업소로 끌고왔다. 방에서 내 취조가 시작되었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내 옆에 고이 앉아 취조 과정을 지켜봤다.

▲ 송대현 그림     © 독서신문
“왜 직장에서 대낮에 도망쳤나?”
“화투치고 싶어서예.”  
“도저히 화투를 버릴 수 없겠나?”
“.....”
“어서 말해 봐!”
“네.”
“남편, 자식보다 화투가 더 좋다 그 말이지?”
“.....”
“솔직히 말해!”
“그거는 아이지만.....”
“됐다! 손목을 자를 수밖에!”

나는 주방 쪽에 대고 부엌칼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고기 써는 대칼을 가져와!”
“알았슈.”
주방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방문이 열리고 홀 책임자인 미스 정이 칼을 내밀었다. 나는 칼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오른팔 내밀어!”
“사장님 와 이러십니꺼?”
“사장? 나 지금부터 사장 아니다!”
“네?”
“너 같은 인간을 보면 종종 미칠 때가 있어.”
나는 그녀의 오른쪽 손목을 낚아챘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서 빌어, 이 바보야.”
남편이 타일렀다.
“손을 놔주셔야 빌 거 아이가.”
“사장님, 한번만 봐주시죠.”

사내가 대신 빌었다. 내가 손을 놓아주자 그녀는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나는 칼을 내려놓고 대신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오달지게 쳤다. 금방 그녀의 뺨에 손가락 자국이 벌겋게 살아났다.
“나가! 어서 화투판으로 꺼져! 너 같은 건 생전 빌어먹을 팔자야!”

그날 밤 장사가 끝난 후에 능수엄마의 남편과 시어머니를 불러 직원들과 함께 파티를 열었다. 술기운이 오르자 능수엄마가 떠들었다.
“우리 사장님 되게 무섭다카이. 진짜 지 손목을 자를라캤능교?”
“내가 허튼짓 하는 거 봤어?”
“사장님 고맙습니다.”
시어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무이는 사람 패는 깡패한티 머가 고마운교. 아직꺼정 얼굴이 얼얼한데예.”
“능수엄마, 더 맞아야 정신차리겠어?.”
내가 기분 좋은 목소리를 날리자 남편이 어깨를 들썩이며 헤헤거렸다.
 
영산홍 철쭉꽃이 피어날 무렵인 따스한 봄날 아침. 나는 장사 준비를 마친 직원들을 홀에 모아놓았다.
“여러분, 오늘 능수엄마를 마담으로 승진시킬 작정이오. 지난번에 오셨던 국회의원들이 능수엄마를 뭐라고 불렀죠?”
“사모님이라고 불렀어요.”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미스 정이 말했다. 능수엄마보다 반년 먼저 들어온 미스 정으로서는 능수엄마의 승진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차 싶었다. 미스 정과 주방장이 가까운 사이여서 미스 정이 삐지면 주방장도 삐지게 마련이었다. 더구나 주방장은 춘천옥 창업공신이 아닌가. 나는 그전부터 생각해온 직제를 발표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할 작정이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애쓴 덕에 우리 춘천옥의 발전은 눈부실 지경이오. 대한민국을 통털어도 춘천옥처럼 상승곡선을 그은 업소는 없을 거요. 직원도 사십 명에 육박하잖소. 직원 숫자가 이만한 식당은 전국에서도 몇 군데 안 될 거요. 그러니 일반 회사처럼 직제를 두는 것도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선 책임자 셋만 지정할 참이오.”
“손님들이 능수엄마를 사모님이라고 부른다니 나는 물러나야겠네.”
내 말을 가로챈 아내가 능수엄마를 보며 쌩긋 웃었다.
“사모님 자리를 빼앗기고 보니 분통이 터지지만 참을 수밖에 없네. 능수엄마, 암때고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아내의 농담에 다시한번 웃음꽃이 피었다. 그처럼 분위기를 살린 아내가 이번에는 미스 진 곁으로 가서 나란히 앉아 말을 걸어주었다. 만약 미스 정이 삐지면 큰일이었다. 나는 아내의 동정을 살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부장을 세 명, 과장을 네 명으로 정할까 해요. 부장급은 주방장, 홀 책임자, 마담인데 셋은 모두 동등한 위상이고, 과장급은 보쌈팀장, 막국수팀장, 김치팀장, 경리, 그렇게 네 명인데 역시 동등해요. 다만 주방장이 다른 부장보다 봉급이 조금 높을 뿐이오.”
“사실 권력 면에서는 주방장이 사장보다 쎄지.”  

아내가 일부러 엄살을 떨었다. 아내의 그 말 속에는, 주방장의 성깔이 아니꼽지만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다는 내색이 묻어 있었다. 지난달에도 이틀간이나 예고 없이 빠졌잖은가. 봉급을 올려달라면 차라리 속이 편할 텐데, 미스 정이 심통을 부렸다 해서 술을 퍼마시고 이틀간 사라졌으니 주인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때마다 아내와 나는 미스 정에게 “정양이 참아줘.” 하고 애원하기 일쑤였다.

주방장을 갈아치우면 될 게 아니냐, 하지만 그렇게 쉬 생각할 일이 아니다. 막국수 맛이 변하는 날에는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업소라 해도 휘청거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주방장 밑에서 막국수 보조팀으로 일하는 춘수를 은밀히 후보자로 키우고는 있지만 그녀석 또한 성깔이 만만치 않다. 입사 반년 차도 안 되던 어느 날 보쌈팀에서 일하는 팀장 웅재와 싸우다가 벽돌을 집어던진 악발이었다.
 
 부모 없이 자란 데다 고아원에서 막굴러먹었으니, 하얀 살결과 온화한 말투 속에 숨겨진 성깔이 보통 아니었다. 강원돗놈이라고 순하게만 보아온 내 판단에 여지없이 흠을 내고 말았다. 녀석의 불꽃같은 성깔을 눙치려고 나는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장사가 끝나면 자식뻘인 춘수를 데리고 함께 술을 마시며 세뇌시키기 일쑤였다.

“우리 업소에 취직하러 들어오는 네 또래가 1년에 100명은 된다. 그런데 너도 알지만 그 중에서 몇 명이나 남아 있니. 다섯 명도 안 돼. 모두 공장이나 다른 편한 일자리를 찾아갔어. 겨우 몇 달 버티던 애들도 친구 꾐에 빠져 결국 빠져나가고 만다. 친구놈들이 찾아와 꼬셔낸단 말이다. 춘천옥 귀신이 된다고 누가 알아주냐? 우린 6시에 퇴근해서 디스코장에 가는데 미쳤다고 밤 10시까지 고생하냐? 그런 식으로 꼬신단 말이다. 그런데 너는 벌써 1년을 넘겼어. 앞으로 넌 출세가 보장된 셈이라구. 앞으로 10년만 참고 기술과 장삿속을 익혀봐.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그동안 나이도 먹을 테고, 봉급도 저축해서 돈도 모을 테니, 네 고향 읍내에 땅을 장만해서 업소를 차리면 벼락부자가 될 수 있거든. 기술, 돈, 경험, 모두 갖췄으니 성공은 보장됐잖아? 내 말이 뻥이냐? 맞지? 네 또래지만 다른 놈들은 모두 철이 없잖니? 퇴근하면 가불한 돈 쑤셔넣고 다방이나 디스코장을 떠돌다보면 장래가 뻔하잖아? 평생 월급쟁이밖에 더 해먹겠어? 그러니 넌 그런 꼴 되지 말고, 죽었구나 하고 딱 10년만 버텨봐. 나중에 맘 잡아준 내 은공 잊지 말구.”

“10년이나요?”
“사실은 10년도 짧아. 최소한 20년은 버텨야 장삿속을 완전히 터득할 수 있어. 그땐 40대에 접어들 나이니 실패할 리도 없구. 공자님 말씀대로 불혹의 나이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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