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비에 젖은 새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비에 젖은 새
  • 독서신문
  • 승인 2016.07.0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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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식 <수필가 / 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새벽부터 녹우가 촉촉이 내렸다. 아침 일찍 등산길에 오른다. 초록빛 신록이 싱그럽다. 풀잎에 맺힌 물방울이 햇살을 안고 영롱하다.

얼마나 올랐을까. 등줄기에 땀이 솟는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목청이 좋은 느릅찌기 소리다. 퍽 청아하게 들린다. 등산길 새소리는 한 모금 청량음료보다 낫다. 어느덧 목적지 8부 능선쯤에 이르렀다. 느릅찌기 소리가 잦아드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새소리가 들린다.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위험에 처한 듯 비명에 가까운 소리다. ‘지지굴! 지지굴!’ 아주 급박하게 들려온다.

나는 그 소리에 홀리기라도 한 듯 소리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산등성이에 서있는 야트막한 참나무 가지 위에 위태로이 붙어있는 작은 새둥지가 보인다. 아직 솜털을 벗지 못한 산새 한 마리가 온 몸에 물기가 젖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다. 어미 새는 보이지 않는다. 텅 빈 둥지 안에 홀로 남은 새끼 산새는 그만 나의 발길을 묶어놓았다. 배가 무척이나 고픈 모양이다. 연신 입을 딱! 딱! 벌린다.

먼 거리를 달려온 육상선수처럼 숨마저 할딱인다. 연홍색 부리를 쩍쩍 벌리는 모습이 어미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듯 했다. 나는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며 놈이 먹을 것을 찾았다. 아무 것도 없다. 도대체 어미 새는 어디로 갔을까? 몇 끼나 굶었을까? 궁금증이 인다.

이러구러 시간이 흘렀다. 놈 사정은 딱하지만 무작정 머물 수 없는 처지다. 어린 새를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어미 새가 주먹 만 한 먹이를 입에 물고 휙! 머리 위로 날아가는 모습이 환영처럼 눈에 어린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빈 둥지 안에 홀로 내팽개쳐진 새가 왠지 막내 딸 같아서이다.
집에 와서 아침식사 준비를 하려니 문득 막내딸아이가 생각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여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린 딸아이다. 어려서부터 꿈이 경찰관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눈만 뜨면 도서관을 찾았다. 그러다가 밤이 이슥해져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외톨이가 된 새끼 산새처럼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끼니를 굶기 예사였다.

그동안 시험공부에 매달린 딸아이는 여자 경찰은 몇 명밖에 채용하지 않는 것에 공부의 한계를 느낀 듯 경찰관 시험을 포기했다. 그리고 얼마 전 서울로 취업했다. 위로 두 딸을 어렵지 않게 취업을 시켜 젊은이들 취업이 이리 어려운 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딸아이가 곁을 떠나자 주말 부부인 나만 아파트에 덩그마니 남게 되었다. 밤늦은 시간만 되면 마치 딸아이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듯하였다. 나도 모르게 이 녀석이 오나 싶어 놀라기도 한다. 나는 막내가 이렇듯 취업으로 인해 쉽사리 내 곁을 떠날 줄 예상치 못했다. 등산로에서 본 어린 새 마냥 험한 세상에 갑자기 딸을 밀어 낸 듯 하여 어미로서 마음이 아프다. 사회 경험도 없는 데다 성품이 여리디 여린 딸이다. 치열하고 냉엄한 생존경쟁에서 사투를 벌여야 할 딸이기에 매사가 걱정이 된다.

사자는 새끼를 절벽에 밀어내는 극기 운동을 시킨다. 될 놈만 키우기 위해서다. 지혜라면 지혜다. 하지만 딸아이를 품 안에 넣어두고 싶은 게 어미 마음이다. 이런 과잉보호가 자칫 녀석의 비상飛上을 막는 일인 지 모른다.

막상 딸아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게 되니 그동안 구박 아닌 구박을 했던 일들이 마냥 뉘우쳐진다. 평소 늦잠이라도 자면 “그런 태도로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느냐?”며 잔소리를 했다. 쌓인 스트레스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딸아이를 버릇없이 군다고 나무라기도 했다. 그런 딸아이가 자신의 꿈을 접고 취업을 해버려 한편 안타깝기도 하다. 온실 속 화초처럼 세상물정 모르는 아직은 철부지 딸이다. 많은 경험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런 바람도 잠시 홀로 텅 빈 집안에 남겨지다보니 빈 둥지 증후군이 찾아왔나보다. 제2의 사춘기처럼 가슴 한 구석이 휑하고 우울감이 엄습해 온다.

그래도 딸아이가 곁에 있을 땐 그 아이 뒷바라지 하느라 식사도 제때 하고 끼니 때 반찬도 이것저것 장만했다. 이즈막엔 혼자 먹는 밥이다 보니 김치 한 종지가 반찬의 전부일 때도 있다. 좋아하던 독서도 멀어지고, 멀뚱히 앉아 텔레비전과 싸우다 보면 밤이 되곤 한다.

홀로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이가 어디 나뿐이랴. 1인 가족이 늘어나고 그래서 식당도 1인 식당이 성업 중인 시대다. 노후에 찾아든 고독과 고립감은 고령화 시대에 나만이 느끼는 비애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이 세상에 홀로 남기 마련이다. 태어날 때도 혼자 왔거늘, 저 세상 갈 때도 혼자 가야한다.

홀로 남아 즐기는 법을 가르치는 곳은 없는가. 목하 홀로서기 연습을 해야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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