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석의 평을 조금 더 보자. 최정화의 소설은 ‘그래서 어떻게 됐다’라는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 물음을 하는 독자들에게 ‘그러면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라고 되묻고 있다. 단편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가 뚜렷한 사례라고 말하고 있다.
소설가 오난영이 시골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미옥의 집에 머문다. 이 둘 사이의 미묘한 긴장은 그러나 오래 가지 않는다. 미옥이 오난영의 파지를 몰래 주워 읽게 되면서 오난영은 마음을 열게 되지만 미옥은 열등의식과 선망, 그리고 집착이 뒤섞인 감정에 따라 다시 멀어진다. 오난영을 다시 서울로 떠나 출판기념회를 열고, 그 자리에 미옥이 나타난다. 한손에 종이칼(오난영이 시골 집에 두고간 칼)을 들고, 한손에는 오난영의 새 책을 든 채.
그리고는 결말은 이렇게 맺는다.
이제 고개를 들어 나를 보세요. 당신의 얼굴이, 당신이 지은 표정이, 당신이 나를 보고 떠올리는 감정이, 그 다음 장면을, 내가 할 행동을 결정할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책을 내밀게 될지 종이칼을 내밀게 될지는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결말은 먼저 말한대로다. 종이칼을 도구삼은 불안이 증폭되지만 결말은 불확실하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지극히 내성적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열등감이나 죄책감, 피해의식을 갖고 있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틀니』에선 ‘하늘’같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앞니 몇 개를 잃는다. 이후 남편은 어딘지 자꾸 못나보이게 되고 급기야 아내는 남편에게 심부름 시킬 정도로 기세는 역전된다.
신경과민 주인공을 보자. 가정주부가 주인공인 『구두』는 주인공인 가정주부가 가사도우미 면접을 보면서 일은 시작된다. 겉으로 보기엔 나무랄 데 없는 여인의 말과 행동에도 주인공은 끝까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그 경계심은 결말을 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지만 소설 구도상 매우 중요하다. 독자의 시선을 온전히 작가 마음대로 끌고 다녔다. 어쨌든 여인은 자신의 낡은 구두대신 주인공의 구두를 신고 가버렸다. 주인공의 말을 들어보자.
그 여자가 내 구두를 탐낸 거라면, 그래서 바꿔 신고 간 것뿐이라면 그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고작 구두 한 켤레쯤은 없어져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전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 여자가, 자기가 나인 줄로 착각하고 내 구두를 신고 갔다고 말이에요. 반전이 있는 재미있는 꽁트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강경석 문학평론가는 이 책의 백미로 『홍로』를 꼽았다. 탁월한 플롯에 눈여겨 볼 것 없던 회색의 일상이 점차 붉고 진한 빛깔을 띠기 시작하면 섬뜩하게 진화해가는 화정을 군더더기 없이 묘파해나갔다는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라면 좀 더 다를 수 있다. 『홍로』에서 주인공이 남자의 동창들과 어울리는 장면이 다소 부자연스럽고 주인공과 남자의 만남도 작위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백미는 『구두』와 『틀니』를 꼽고 싶다.
『구두』는 주인공 심리묘사가 뛰어나 독자들을 몰입시키고 있다. 반전도 흥미있다. 『틀니』 또한 얼마든지 있을 법한 소재로 공감의 폭을 넓혔다. 그리고 주인공의 태도 변화가 남편의 단순 사고에서 비롯됐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반란의 씨가 비로소 터져 나온 것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중년 부부들에게 시사하는 바도 있다.
이글은 평론가 강경석의 글에 기댄 바 크다. 그러나 더러는 평론도 비판적인 면이 있다면 어떨까.
■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펴냄 │ 276쪽 │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