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한글은 누가 만들었는가. 세종을 비롯하여 집현전 학자, 신미 스님 등이 거론된다. 대세는 세종의 작품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전하창제(殿下創制)로 분명히 설명돼 있다. 세종실록(1443년 12월 30일자)에도 임금이 창제했음을 밝혔다.
이 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창제하였다. 그 글자는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였고, 나누어 초성 중성 종성으로 삼아, 이를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우리나라 말에 관한 것을 모두 글로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다. 이를 훈민정음이라 이른다.
세종실록을 비롯하여 세종신도비, 성삼문의 동자습, 신숙주의 홍무정운 역훈, 증보문헌비고 등을 통해 세종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또 세종의 후궁인 신빈김씨 소생인 담양군 후손에게 내려오는 구전도 왕의 친히 만든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정인지 성삼문 신숙주 등에게 명하여 찬정(撰定)’이라는 표현이 있고, 지봉 이수광은 ‘국(局)을 설치하여 만들었으나 글자 정교함은 대왕의 밝은 슬기’라고 적었다. 이는 세종이 직접 한글을 창제한 게 아님을 의미한다.
만약 세종이 창제하지 않았으면 누가 만들었을까. 작가 박해진은 신미 스님을 주목한다. 1998년부터 고건축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그는 숭례문, 창덕궁 인정전, 경복궁 근정전, 덕수궁 중화전, 수원 화성 팔달문, 여수 진남관 등의 해체 보수, 조사 기록을 전담했다. 2002년 속리산 대웅보전 해체 인연으로 혜각존자 신미를 만났다. 스님의 발자취를 찾고, 훈민정음 연구에 몰입했다.
10년 넘는 긴 시간동안 훈민정음을 연구한 그는 『훈민정음의 길 - 혜각존자 신미 평전』에서 한글 창제의 주역이 신미대사임을 상정한다. 많은 문헌조사와 현장답사를 통해 내린 결론이다. 작가는 15세기에 간행된 정사를 비롯하여 학자의 개인 문집, 훈민정음 연구서와 논문, 현장 답사를 통해 확인했다. 검증한 자료를 작은 부분도 빠뜨리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맞게 생생하게 풀어냈다. 1,374개의 주(註)는 실증적 자료 조사의 결과물이다.
세종은 신미를 절대적으로 신임한 듯하다. 세종은 승하 며칠 전 신미를 침전으로 맞아 들여 설법을 들었다. 세자(문종)에게 신미를 ‘선교종도총섭(禪敎宗都摠攝) 밀전정법(密傳正法) 비지쌍운(悲智雙運) 우국이세(祐國利世) 원융무애(圓融無礙) 혜각존자(慧覺尊者)’에 봉하라는 유훈을 남겼다. 문종은 ‘훈민정음으로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했다(祐國利世)는 법호를 신미에게 내렸다.
세종의 신미에 대한 신뢰는 작가 박해진에게도 이어진다. 조선시대에 유교와의 버거운 경쟁을 해온 불교는 잊혀진 것도 많다. 신미도 그 한 부분일 수 있다. 작가는 흔적이 지워진 신미의 발자취를 팩션형태로 복원했다. 한글을 세종의 기획, 신미의 주연으로 보고 역사서를 썼다.
/ 이상주 북 칼럼니스트 (letter3333@naver.com)
■ 훈민정음의 길: 혜각존자 신미 평전
박해진 지음 | 나녹 펴냄 | 770쪽 | 3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