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갈림길
  • 독서신문
  • 승인 2007.10.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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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환(토탈아티스트) 作 「갈림길」     ©독서신문

 
우리는 전자 공간과 현실 공간의 중첩현상 속에 살아가면서 시뮬라크르(simulacre)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을 지칭한다. 즉 흉내 낼 대상이 없는 이미지로 원본 없는 이미지는 그 자체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됨을 뜻한다. 이렇게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일상은 어느 사이에 두 가지 상호 모순된 그림자를 만들었다. 있을 수 있는 일과 있어나서는 안될 일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 그 것이다. 가시계의 모든 것들이 생성되고 사라짐 속에 아톰과 비트의 세계,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 물질과 비물질 세계, 영토화와 탈 영토화 세계는 경계선을 허물어가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가상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면서 인류의 생활방식과 사고까지 바꾸고 있다.

또한 이야기는 책으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디지털 공간과 컴퓨터 게임, 각종 상품, 디자인, 광고 속에도 다양하게 존재하고 소통되고 있다. 이 소통은 디지털 매체의 컨버전스로 이어져 통합되고 있으며, 학문과 학문 간, 학문과 현실 간 경계를 허무는 통섭(統攝)의 움직임도 학계와 산업계 곳곳에서 활발하기 일어나고 있다. 최재천 교수는 “통섭은 지식의 대통합을 뜻하는‘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우리말로 번역한 용어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뜻하며, 말 그대로 ‘큰 줄기를 잡다’, 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뜻이다. ‘통섭’은 다른 두 개를 화학적으로 녹여서 하나로 합치는 ‘융합’과는 다르다.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 넓게 파려면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여성시인 이원은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에서‘몸 속에 웹 브라우저를 내장하게 되었어. 야금야금 제 속을 파먹어 들어가는 달. 신이 몸 속에 살게 되었어. 신은 이제 몸 속에서 키울 수 있는 존재야. 몸 속에는 사철나무. 산. 목이 잘린 불상. 금칠이 벗겨진 십자가. 당신이 보낸 천년에 한 번 우는 새. 당신이 내게 올 때 걸었던 최초의 오른발과 왼발. 기어이 제 살을 다 파먹은 달. 그물로 된 달. 그물에 걸린 신들의 꼼지락거리는 손가락들과 발가락들을 생각해봐.’라며 0과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는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뜨는 것이 아니라 천개의 달이 야후라는 강에 뜨게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예전의 달은 천 개의 강에 떠 있었지만 이제는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뜨고 있다. 잡을 수 없는 실재하는 ‘나’를, 이원은 키보드 조작과 클릭만으로 ‘나’의 이미지를 ‘천 개’ 쯤은 간단히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중첩현상으로 ‘놀이성’이 증대한 결과라며, 최혜실 교수(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는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을 만나다, 삼성경제연구소, 2006』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사람보다 기계에 친밀감을 느끼고, 나아가 자신의 반려자와도 같은 기계와 손잡고 살게 될 날을 꿈꾸는 인류를 우리는 ‘오타쿠’라고 하는데, 이들은 일정한 직장도 없으며, 연애나 결혼, 재테크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그것을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들은 컴퓨터 게임이나 만화의 주인공, 가수에 대해 온갖 정보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오타쿠들은 단지 가상세계로 들어가 그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실세계를 자신의 가상세계에서의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모두 조금씩은 가상놀이인간이라 할 수도 있다.

작품 「갈림길」은 시뮬라크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모습을 들뢰즈는 『앙띠 오이디푸스』에서 ‘언어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접속이다. 접속이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곳에서 성립하여 요컨대 욕망은 기계를 통해 작동되는 의지로서, 기계로서 존재하며 기계를 통해 어떤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여 현실적인 무언가를 생산함을 말한다.’그것은 ‘기관 없는 신체’들 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으로 존재하는 신인류인 가상놀이인간이 드디어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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