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춘천옥 (3회)
소설 춘천옥 (3회)
  • 김용만
  • 승인 2007.10.0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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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대답 끝에 존칭어가 붙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러겠습니다 선생님” 그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무척 어색했지만 지금은 그 존칭어가 빠지면 마음 한 구석이 섭섭할 정도다. 한갓 생존전략에 불과한 언사라 해도 그 형식이 싫지는 않다. 그동안 내용주의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살아온 내가 그만큼 형식논리에 젖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만큼 시대가 변하고 내가 변했다. 갓 쓰면 말 타고 싶다는 말처럼 한국사람들 생활에 여유가 생겼으니 좀더 나은 서비스를 받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다. 이제는 서비스의 질을 갖고 따질 시대가 되었다. 어떤 서비스가 제대로 먹혀드느냐, 거기에서 가장 효험이 큰 서비스가 진실성이다. 고전적인 그 단어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2초는 너무 멀다.
  1초가 손님의 기분을 좌우한다.
  손님은 출입문을 열고 홀에 들어설 때 인사가 1초만 늦어도 기분이 잡치게 마련이다. 그 대신 출입문을 열 때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산뜻해진다. 그처럼 신속한 인사속도는 손님의 기분지수를 상승시킨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손님을 모시는 태도다. 인사속도가 기분지수의 30%를 상승시킨다면 손님을 모시는 태도는 70%를 상승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야 한다. 새 손님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일일이 뒤돌아보지 않고도 뒤통수가 자동으로 감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손님을 어떤 식으로 모셔야 할지 그 태도에 대해 서빙 팀을 수시로 지도하지만, 성과는 교육보다 각자의 행동감각에 좌우된다. 한 팔로 손님의 허리를 감을 듯한 친절미와 미소 띤 얼굴로 맞아들이는 그 절묘한 동작은 마치 꽃밭을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황홀했다.  
 
▲ 그림 송대현     © 독서신문
  능수엄마와 미스 박의 눈빛이 점점 신비스러워진다. 한참 손님 안내에 열중하다보면 그녀들의 눈은 신비롭고 아득해진다.
  아름답다.
  홀과 방 사이를 슬리퍼도 신을 새 없어 맨발로 뛰어다니며 손님을 모시는 그녀들의 연속동작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마에 땀이 맺힌다. 여인의 땀은 향기롭다. 손님들은 그녀들의 땀을 보며 슬슬 미치기 시작한다. 손님들은 미치고 싶어 춘천옥에 온다. 그러니 장사의 비결은 간단하다. 손님을 미치게 하면 된다.
  서빙 팀은 손님들을 자리에 앉히는 기술이 탁월해야 한다. 식탁 배정이 서비스에 그만큼 중요하다. 피크타임에는 10명 앉을 자리에 20명이 앉을 때가 허다하다. 엮어서 앉을 도리밖에 없다. 식탁을 끼고 한 줄이 삥 둘러앉으면 뒤쪽에 겹으로 또 한 줄이 둘러앉는다. 한 줄로는 아무리 총총히 앉아도 모두 앉을 수 없다. 손님들은 겹으로 앉고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석에 궁둥이를 붙이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뿐이다. 손님이 불평하지 않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도 종업원들의 기술이다.
  “이따 옆자리가 비면 눠 드시게 할게요.”
  능수엄마의 그 말에 모두 깔깔 웃는다. 어떤 짓궂은 손님이 “난 침대 펴놓고 먹을 거야.” 하면 능수엄마는 이렇게 대꾸한다.
  “나도 일 때려치고 곁에 누울 거야.”
  만약 그 짓궂은 남자가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능수엄마는 나이가 많은 그 손님한테 눈을 부라린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까불어.”
  또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진다.
   술잔 돌리는 모습을 살펴보면 웃음이 터지다가도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현찰을 내고 음식을 사먹는 귀한 손님이면서도 너른 자리에서 점잖게 대접 받지 못하고 몸을 비틀어 술잔을 돌리는 꼴이 민망하고 아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춘천옥에 오면 기분이 좋단다.
  뒷줄 사람이 식탁 건너편 사람의 술잔을 받으려면 엉덩이를 들고 동료 어깨 사이로 팔을 밀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앞줄 사람이 자기 뒤쪽 사람에게 술잔을 줄 때는 몸을 뒤로 돌려야 한다. 술잔은 앞 사람이나 옆 사람한테 주는 게 상식이지만 춘천옥에서는 뒷사람한테도 술잔을 줘야 한다. 춘천옥은 그처럼 묘한 상식을 만드는 곳이다.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을 때도 뒷줄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엉덩이를 들어야 상에 놓인 자기의 젓가락이나 수저를 들 수 있다. 먼 곳의 안주를 집으려면 엉덩이를 훨씬 높이 들어야 하고, 더 먼 곳의 안주를 집으려면 아예 엉거주춤 일어나야 집어먹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안주를 접시에 덜어서 뒤쪽 방바닥에 놓고 먹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도 편히 먹을 수 없다. 또 다른 팀들이 복도에 즐비하게 서서 자리 나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락없이 수용소에서 밥을 타먹는 형국이다. 그처럼 얄궂은 자리지만 일류 재벌 회사의 중역이나 부장급 간부들은 물론, 고급 공무원, 대학교수, 고급장교들도 끼어 있다. 그들은 다른 업소라면 진짜 왕 대접을 받을 신분이지만 미치고 싶어서 춘천옥에 온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능수엄마의 목소리가 간드러지다. 복도에 서서 대기하는 손님들의 모습이 슬슬 멍청해지기 시작한다. 그들의 입에서 꿈결처럼 몽롱한 말이 흘러나온다.
  “이 집에 오면 내가 이상해지는 것 같애. 꼭 머리가 도는 기분이야.”
  그처럼 춘천옥은 손님을 미치게 만드는 공장이다.
  미침의 세계를 체험하시오.
  그렇게 외치고 싶다. 내가 종업원들을 미치게 했고, 종업원들이 춘천옥을 미치게 했고, 춘천옥이 손님들을 미치게 했다. 미침의 세계는 극락이다. 고로 춘천옥은 극락이다.
  손님은 계속 밀려든다.
  “어서 오십시오.”
  이번에는 국회의원들이다. 뉴스시간에 많이 보아온 얼굴들이다. 7명인데 그 중에는 총재도 끼어 있다. 자리가 없어 나는 직원들 옷 갈아입는 방을 떠올렸다. 그 지저분한 구석방으로 의원들을 안내했다. 냄새가 나고 방바닥이 축축하다. 주방 직원들의 메밀가루와 고춧가루 묻은 작업복이 벽에 즐비하게 걸려 있지만 손 쓸 여유가 없다. 상판 껍질이 벗겨진 밥상 위에 얼른 백지만 깔게 하고, 방석을 가져와 깔았다. 의원들이 자리에 앉자 나는 정중히 예의를 차렸다.
  “죄송합니다. 지저분해서....”
  “이집에 와서 이렇게 자리 잡은 것만도 다행이오.”
  총재의 말이다. 의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내가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하자 총재가 합석을 권유한다. 그는 나를 자기 곁에 앉히고 직접 소주를 한 잔 채워준다.
  “개업한지 얼마나 됐소?”
  “4년쨉니다.”
  “부인 솜씨가 좋으신가 보오.”
  “무척 애를 썼지요. 맛은 정성에 달렸거든요.”
  “맞는 말이오. 정치도 정성이 필요한데....”
  총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저분이 부인이신가요?”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사무총장이 복도를 헤집고 다니며 자리 안내하는 능수엄마를 가리킨다. 나는 마담 역할 하는 능수엄마를 내세우고 싶어 그냥 내 아내라고 대답해버렸다.
  “대단한 분이시오. 인삿새나 표정이 어쩌면 저리 밝으시오. 이집은 음식 맛도 좋지만 분위기가 꼭 우리집 안방 같소.”
  사무총장이 지친 목소리로 말한다. 그의 얼굴에는 정말 쉬고 싶어하는 간절한 표정이 묻어 있다.
  “오늘은 쉬러 온 거니 쥔장의 얘기나 들어봅시다. 도대체 손님 끄는 비결이 뭐요?”
  총재가 사무총장 잔을 받으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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