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서정(抒情)과 아포리즘의 미학(美學)
순수 서정(抒情)과 아포리즘의 미학(美學)
  • 독서신문
  • 승인 2007.10.0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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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주 시인
오늘도 산마루에
홀로 앉아서
먼 산을 책상 삼아 글월 씁니다
파아란 하늘 위에
은하물 찍어
계수나무 붓으로 메워 봅니다
별보다 많은 사연
다 쓸 수 없어
못 맺은 채 바람결에 실어 보내니
대낮엔 햇빛 부셔
못 읽을세라
고요한 밤 달빛에 비춰 보소서
-「하늘에 쓴 연서(戀書)」전문-
 
영문학자로 그동안 교육계에 몸담으면서 틈틈이 시작활동을 통해 『김봉주 시집』 『시선』등의 시집을 발표했던 김봉주 시인이 그 시집 중에서 선택한 몇편을 화장(化粧)하여 『하늘에 쓴 연서(戀書)』란 이름으로 선보였다.
▲ 김봉주 시인     © 독서신문
이 시집에 담긴 김봉주 시인의 작품들은 이미 지금부터 5~60년 전, 시인의 젊은 날에 창작된 연륜 쌓인 시편들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비록 그 다루는 소재가 옛날 것이지만 새로운 이미지의 시창작적 전개를 하고 있다.
특히 앞에 언급한 「하늘에 쓴 연서(戀書)」 전체로서의 다양하고도 다채로운 상징적 메타포(은유(隱喩))는 수사(修辭)의 하이퍼볼(과장법(誇張法))을 도입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신선한 이미지 창출 성과를 이루고 있어 김봉주 시인의 시재(詩才)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홍윤기 시인·한국외대 한국시 담당교수)
이와 관련 홍 교수는 김 시인에 대해 “유능한 시인은 세련된 은유의 기법을 통하여 기성적(旣成的)인 관념을 불식하면서, 새로운 가치관의 미학적 이미지를 엮어낸다. 김봉주 시인은 오늘의 시대가 새롭게 요구하는 시창작의 새로운 형상화(形象化) 작업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있다”고 평한다.
 
‘시는 운율을 바탕으로 하는 아름다운 노래’
 
봄 꽃 피는 밤
시름에 겨워 앉았노라면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
이런 밤 누가 나를 부를까
달 밝은 밤
홀로서 자리에 누웠노라면
창틈으로 나를 부르는 소리
이런 밤 누가 나를 부를까
오동잎 지는 밤
고독에 잠겨 나뭇잎 보며 거니노라면
어디서 나를 부르는 소리
이런 밤 누가 나를 부를까
눈 내리는 밤 호롱불 벗삼아
책 읽노라면
뜰에서 소곤소곤 부르는 소리
이런 밤 누가 나를 부를까
-「밤에 누가 나를 부를까」전문-
 
▲     © 독서신문
「밤에 누가 나를 부를까」는 이렇다 할 테크닉을 구사하고 있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이 작품이 이미 내재시키고 있는 뚜렷한 기교적 콘텐츠가 그득히 담겨있다는 평을 듣는다. 현대시의 시작법에 있어서 ‘기교 아닌 기교’라고 하는 고도의 표현 수법의 구사라는 것이다.
‘밤을 제재(題材)로서 설정하고, “봄 꽃 피는 밤 / 시름에 겨워 앉았노라면 /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 / 이런 밤 누가 나를 부를까”(제1연)로 전개시키며 계절의 변화라는 다양한 시적 변화의 변주 속에서 “이런 밤 누가 나를 부를까”라는 환상적 이미지의 동어 반복의 기교적 처리가 잘 다듬어진 세련된 시어(詩語)로 빼어나게 메타포 되고 있어 독자에게 정서적 감흥을 배가시켜준다.
평론가들은 “서정시는 결코 ‘이야기’가 아닌 ‘운율’을 바탕으로 하는 아름다운 ‘노래’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면에서 김봉주 시인의 「하늘에 쓴 연서(戀書)」나 「밤에 누가 나를 부를까」와 같은 서정미 넘치는 순수 서정과 아포리즘의 미학적 작품은 높이 평가되어야한다고 홍 교수는 말한다.

숭고한 민족 문화사의 인식 추구

김봉주 시인은 서정의 시세계를 탐닉하면서 심미적인 서정의 역사인식의 새로운 이미지를 전개하고 있다.

신라 천년 그 기나긴 빛나던 나날
하룬 양 훌쩍 흘러 가버렸는가
왔소, 왔소, 내 왔소 경주, 나의 님
내 두고 두고 꿈속에도 그리던 님이여
이제 님의 품에 안기니 두근대는    이 가슴
감개도 무량커니 뜨겁게 볼 적시는  오늘
황룡사 큰 가람 전각이랑 어디로    가버렸소
역대 왕릉만 여기 저기 드높이 솟구치건만
오랜 세기의 부귀공명 흘러간 강물이었던가
  :
중략
  :
저기 매달린 신라 천년아 애절히 울리지는 마라
에밀레종 기나긴 역사의 큰 몸짓 그 큰 품안에서
혁거세, 유신장군 님들 가고 없다고  누가 외칠 건가
모래알 하나에도 옛 혼 어리었고
가지마다 풀잎마다 님의 생명 파랗게 서려 있어
바라보면 가슴 뛰네 경주, 님 찾아   내 왔소
산 넘고 물 건너 육백리 길 겨레의  영원한 님이여!
-「경주(慶州)를 찾아」 중에서-

「경주(慶州)를 찾아」는 숭고한 민족 문화사의 인식 추구의 시세계이다. 민족의 전통 문화를 찬양하는 시인의 민족문화사적 시세계로 신라 천년 경주의 민족사적 역사 인식을 아포리즘의 미학으로서 이미지화 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즉 시적 오브제(美를 생성시키는 물체)로서의 사상(事象)을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이며 석굴암의 숭고한 예술적 발자취를 낭만적인 분위기로 도출시키는 환상적, 상징적 시 작업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총 6부로 이루어진 이번 시집은 엘리옷적인 로맨티시즘의 신고전적 창작을 전개하며, 시의 영감(靈感, 인스피레이션)이 작용하고 있다. 시 전체로서 다양하고도 다채로운 상징적 메타포는 수사의 과장법을 도입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신선한 이미지 창출 성과를 이루고 있다.
“김봉주 시인은 오늘의 시대가 새롭게 요구하는 시창작의 새로운 형상화 작업을 이루어내고 있어 그의 참신한 메타포 수법, 서정 넘치는 순수 서정과 아포리즘의 미학적 작품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홍 교수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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