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연극 '7년 동안 하지 못한 말', 기억 상실 모티브를 신선함으로
대학로 연극 '7년 동안 하지 못한 말', 기억 상실 모티브를 신선함으로
  • 황혜연 객원문화기자
  • 승인 2014.02.2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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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황혜연 객원문화기자]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남자는 기억을 잃게 된다. 지워진 기억으로 인해 서로는 잠시 동안의 이별을 고하지만 본능적 이끌림일까, 혹은 운명적 이끌림일까. 남자는 지워진 기억에도 불구하고 다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이는 대학로 연극 <7년 동안 하지 못한 말>의 스토리를 최소문장으로 압축한 것이다. 그러나 굳이 이 연극이 아니더라도 해당 스토리는 그간의 '기억상실증'을 모티브로 한 대부분의 러브스토리에도 적용 가능해 보인다. 그 정도로 기억상실 코드가 한정적 스토리 진행을 보이고 있고, 그렇기에 혹자는 이를 식상하다 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기억상실 코드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고, 또 열광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겨울연가>, <내 머릿 속의 지우개>, <착한남자>, <해를 품은 달>,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러브스토리들이 시대와 장르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그 '식상한' 코드를 차용했다는 것은 바로, 기억상실 코드가 단지 진부하다고 치부하는 의견에 대한 반증이다. 이에 덧붙여 <7년 동안 하지 못한 말>의 익숙한 스토리 속 새로움은 비단 기억상실 코드가 동일한 내러티브 진행을 가질 것이란 편견에 경종을 울린다.

<7년 동안 하지 못한 말>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제를 동반한다. 이는 본디 해당 증상이 가진 속성에서 기인하는 특징이기도 한데, 기억상실은 기억의 회수 즉, '회상'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회상은 flashback 기법을 통해 우리에게 가시화되는데, 현재의 시간 속에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들이 침투하는 것이다. 이는 기억상실 코드의 맹점인 '진부함'을 반전과 새로움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회상을 통해 주어지는 기억들은 주인공에게 있어서도, 관객에게 있어서도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단서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7년 동안 하지 못한 말>은 기억을 잃은 인호(김선호 분)에게 현재 시간 속 침투하는 과거의 기억이 회상처럼 파편이 돼 등장한다. 이로 인해 공연이 진행될수록 현재 인호의 눈앞에 있는 여자, 즉 인호를 진료해주는 간호사 시은(유미영 분)이 과거 인호의 연인이었다는 단서들이 주어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의 파편을 맞추는 인호처럼 관객 또한 둘 사이의 관계 속 파편을 하나씩 찾아갈 수 있다.

▲ 연극 <7년 동안 하지 못한 말> 이미지. [사진 제공=씨즈온]

극 속 기억상실 코드는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여타의 장르와는 달리 관객의 위치를 차별화한다. 연극에서는 드라마처럼 편집을 통한 장면 전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무대 안에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이는 연극이 갖는 Breaking illusion(환상깨기, 낯설게하기)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관객은 이런 비현실적인 연출로 인해 몰입감에 방해를 받지만 공연의 흐름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오히려 객관적이고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억상실 코드가 어떠한 사건을 제시한다고 생각해봤을 때 관객의 몫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공연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7년 동안 하지 못한 말>에서도 대표적으로 '환상깨기' 기법이 사용됐는데 인호(김선호 분)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할 때마다 해당 배우가 아닌 멀티남(박원진 분)이 인호의 과거를 연기한다. 관객은 낯설음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이로 인해 공연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아가 인호의 사라진 기억의 한 부분을 찾을 수 있는 동기부여를 얻게 된다.

이처럼 더이상 기억상실 코드는 단순히 스토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소재로써가 아니라 스토리 전체의 향방을 결정짓는 사건으로써, 관객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지침으로써 작용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호 앞에 간호사 시은이 등장했을 때부터 그녀가 바로 인호의 사라진 기억 속의 마지막 조각이라는 것을. 또한 ‘7년 동안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렇기에 이 연극은 마치 답이 이미 나와 있지만 도저히 풀 수 없는, 그래서 풀지 못하는 그런 문제와도 같다. 손 닿을 듯 먼 곳에 있는 이 모순적 거리를 두 연인은, 관객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인호의 기억 상실은 관객에게 안타까움이자 애절함이다. 사라진 기억의 퍼즐은 인호의 손에, 또 관객의 손에 놓여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애절함을 바라본다면 그 누가 이를 식상하다고 말할까. 당신이 그 기억 속 조각을 함께 찾아준다면 그 ‘흔하디 흔함’은 새로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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