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가 준 선물, '은메달의 감동'
김연아가 준 선물, '은메달의 감동'
  • 조석남 편집국장
  • 승인 2014.02.2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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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로 이렇게 전국민이 감동을 받고 한마음이 된 적이 또 있었을까? '피겨 여왕' 김연아(24)는 마지막까지 우리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고 아름답게 퇴장했다. 그녀의 마지막은 환하게 웃었기에 역설적이게도 더욱 가슴이 아팠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그녀는 깊은 여운을 남기고 그렇게 18년 피겨 인생의 마지막 한 장을 장식했다.

미국 언론 <더 애틀랜틱>은 23일(한국시간) 온라인판을 통해 '피겨스케이팅을 지배한 김연아의 슬프고도 완벽한 마무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소치에서는 동기부여가 이슈였다. 이미 완벽에 도달한 선수는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연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대에서 다시 한번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를 두 차례(쇼트와 프리)나 선보였다. 모든 연기가 쉬운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녀는 피겨의 전설이 되어 떠났다.' '이번 대회의 결과로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김연아의 위대한 유산을 결코 흠집낼 수는 없다. 김연아가 떠나는 스포츠, 피겨스케이팅을 향해 같은 말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피겨스케이팅은 이번 대회 결과로 흠집이 생겼다는 의미)'

이처럼 뜨거운 찬사를 받으며 은퇴한 선수가 얼마나 더 있을까?

김연아는 4년 전 밴쿠버 올림픽에서 '완벽함' 그 자체를 보여줬다. 228.56점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시상대의 정상에 섰다. 주니어 시절부터 걸어온 도전의 길에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이었다. 마치 16년 전,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더 샷(The Shot)'을 터뜨렸던 순간처럼 자기 인생의 가장 큰 목표를 이뤘다.
2001년, 조던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동안 조던이 만들어낸 영광의 순간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던에게 우승 트로피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원 없이 뛰고 싶었다. 사람들은 조던이 우승 트로피를 들었을 때보다 더 많은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김연아는 오랜 고민 끝에 지난 2012년 9월 "2014년 소치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며 선수생활 연장을 공식 선언했다. 마치 조던 등 역대 최고의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이 밟았던 일련의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국민들에게는 '희망의 연장'일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고통의 연장'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일단 결단을 내린 김연아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기를 펼치는 데에만 주력했다. 소치 올림픽 마지막 4분간의 연기 '아디오스 노니노'는 김연아의 선수생활을 압축해놓은 느낌이었다.

"그 무언가가 나를 흔들어댄다 한다 해도, 나는 머리카락 한 올도 흔들리지 않겠다"(『김연아의 7분 드라마』 중) 경쟁자들이 이미 고득점을 받아 가장 어려운 순간,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 여왕의 피날레를 장식한 그녀는 역시 흔들리지 않았다. 음악이 시작된 순간부터 매력적인 눈동자로 시선을 사로잡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목표로 했던 '후회 없는 연기'를 마쳤다. 사람들은 그런 김연아의 모습을 보고 4년 전 이상의 감동을 느꼈다.

이번 올림픽은 유독 구설수가 많았던 대회로 남을 듯 하다. 러시아로 귀화해 3관왕에 오른 안현수를 둘러싼 해묵은 파벌 문제는 올림픽 기간 내내 여론을 들끓게 했다. 심지어는 대통령마저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 결과와 메달 순위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성적 지상주의', '금메달 지상주의'도 여전했다. 여기에 일부 네티즌들은 한국 쇼트트랙 선수와 경기 중 충돌한 외국선수의 SNS에 사이버 테러를 저질러 해외 여론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소치 올림픽 막판에 들어서며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혼신의 힘을 다한 '아름다운 2위'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그 가치를 느낄 줄 아는 성숙한 관전문화가 가슴과 가슴을 잇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김연아 효과'였다.

김연아는 연기가 끝나고 믿기지 않는 점수판을 바라볼 때도, 금메달을 딴 러시아 선수를 축하해줄 때도, 아쉬움 속에 인터뷰를 할 때도 의연하고 성숙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이런 김연아에게 아버지 김현석씨는 편지를 통해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에 차지 않았을 점수를 받아들고도 너는 눈물을 꾹 참고 환하게 웃었지. 너의 미소를 보는 순간 아빠는 여섯 살 때 네가 피겨를 한 이후 가장 큰 행복을 느꼈어. 우리 딸이 악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했구나. 결과에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연기를 했구나. 현실을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다시 전진하기로 했구나. 네가 웃어주어서 아빠는 정말 고마웠다.'

김연아는 마지막 갈라쇼 무대의 곡으로 존 레넌의 'imagine'을 선택했다. '그동안 수고했다, 고마웠다, 행복했다'며 격려와 박수를 보내는 팬들에게 김연아는 평화와 반전의 메시지를 전했다. 메달 색깔은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자신의 모습처럼 세상 사람들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은퇴의 순간이었다.

김연아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준 무엇보다도 큰 선물, 그것은 국민들을 '금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은메달의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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