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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우선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유화 ‘진주귀고리 소녀’를 모티브로 이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의 실력에 찬사를 보낸다.
실제로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그림 몇 점만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을 뿐이라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는 ‘진주귀고리 소녀’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대단한 것이었고, 여기에 이야기를 붙여주고 싶은 예술적 욕망이 이 소설을 만들어낸 셈이다. 순전한 상상만으로. 오히려 작가는 말한다.
“거의 알려진 내용이 없어서 오히려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편했다.”
책을 읽다보면 베르메르의 그림들이 중간중간 들어있다. 베르메르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거기에 맞는 작품을 실제로 실어놓은 것이다. 그렇게 소설의 흐름을 쫓다 보면 그림과 글을 번갈아서 살펴보게 되는데 이것이 이 소설이 가진 특이한 재미 중 하나다.
아버지의 실명으로 인해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된 16세 소녀, 그리트의 시점에서 이 소설은 전개된다. 그리트는 내내 베르메르를 ‘그’라고 지칭하면서 신비감과 존경심을 동시에 드러낸다.
처음 만날 때 그리트가 색에 대한 감각을 보여준 바 있기에, 베르메르는 그녀를 유심히 살피면서 비공식 조수로 활용하기까지 한다. 남에게는 절대로 안 맡기던 재료 구매와 물감 제작을 시킬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베르메르 가족들이 그리트에게 갖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온갖 질투와 험담이 그리트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힘들게 한다.
소설의 문체는 무척이나 정제되어 있어서 읽다 보면 그리트의 심정에 거의 동화가 되는 느낌이다. 베르메르와 그리트는 신분의 차이, 가족들의 시선, 알 수 없는 두려움 등 온갖 장애물 속에서도 심오한 감정적 공감을 가져간다. 그러나 물론 둘은 서로 표현하지 못한다. ‘평행선’이 머리에서 그려질 정도로 둘의 거리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다.
원작 그림 속 소녀의 신비한 표정은 이런 환경에서 나왔다(는 것이 작가의 상상이다). 매혹하는 듯 매혹당한 듯. 미소 짓는 듯 안타까운 듯.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소설의 주된 포인트를 하나도 표현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여타 베르메르 그림들을 구경할 기회도 별로 없고, 물론 작화 배경을 알 기회도 없다. 그리트가 피터를 만나게 되는 심리도 영화만 보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해한다. 한정된 시간의 영상으로 이걸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에게 아쉬운 점이라면 두 사람의 심오한 감정선마저 제대로 파헤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리트는 하녀 신분이었던 만큼 귀를 뚫어놓지 않았었다. 그리트가 베르메르에게 묻자 베르메르는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라고 답한다. 할 수 없이 그리트는 스스로 귀를 뚫고 고통을 감내한다. 이것이 주인과 하녀 사이의 간극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친절하게도 베르메르가 직접 그리트의 귀를 뚫어준다. ‘평행선’으로만 있어야 하는 둘 사이의 거리가 파괴되는 순간인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소설을 기반으로 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소설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굉장히 신선한 소재로 재미있게 보였을 테고, 소설을 이미 접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망작’에 불과하다.
사실 이 짧은 칼럼으로는 제대로 표현하기도 힘든 그리트의 묘한 심리상태와 불안을 영화가 드러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아름다운 네덜란드 풍경과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이 잘 드러난 영화, 이 점만큼이 이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동감하는 점이라 하겠다.
/ 홍훈표 작가(exomu@naver.com)
■자유기고가 홍훈표
·연세대에서 경제학 전공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 단막뮤지컬 <버무려라 라디오> 극본 집필
·지촌 이진순 선집 편찬요원
·철학우화집 『동그라미씨의 말풍선』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