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화를 위한 문학 - 『햄릿』(윌리엄 셰익스피어 著)
무대화를 위한 문학 - 『햄릿』(윌리엄 셰익스피어 著)
  • 독서신문
  • 승인 2013.09.0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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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안 나오는 원작 이야기 <9>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소설 『햄릿』 표지, 영화 <햄릿> 스틸컷(왼쪽부터)    

 
 
 
[독서신문] 시, 소설, 희곡, 수필. 문학의 4대 분야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희곡은 아주 특별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바로 무대화를 염두에 두고 쓰인 문학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희곡은 상당히 까다로운 작법을 필요로 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한정된 인원이 극의 내용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 외에도 희곡을 처음 읽는 독자들이 가장 난처해하는 부분 중 하나는 대사를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소설과는 달리, 대사 앞머리마다 화자가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흐름을 놓치면 뭐가 누구의 말인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무대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문학이기 때문에 글을 읽다 보면 절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의외로 이 상상의 폭은 꽤 넓다. 이것도 희곡의 특징 때문이다. 행동을 정확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지문과 대사로만 이뤄졌기 때문에 연출가나 배우가 간섭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특징 때문에 희곡을 무대화한 연극에 절묘한 점이 생긴다. 바로 ‘내가 상상한 장면’을 연출가는 ‘전혀 다르게 표현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같은 글을 읽고, 저렇게 다르게 표현하는구나.’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연출계의 바이블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가 해야 할 일은, 작가가 글로 써낸 문장의 사이, 즉 행간에 있는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여 이를 무대에서 표현하는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과거에야 희곡을 무대화한 게 연극이었으니, 언제나 1회성으로 그쳐서 독자들로서는 위와 같은 비교를 하기가 여의치는 않았다. 하지만 영화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퍼지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 희곡의 무대화가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시대를 뛰어넘어 ‘이 연출가’와 ‘저 연출가’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햄릿』은 위대한 작품이다. 그런 만큼 수많은 감독들이 영화화를 시도했다. 뿐만 아니라 연극에서도 여전히 수없이 변주되고 있다. 영화정보 사이트에서 ‘햄릿’을 검색해보면 무려 31개의 작품이 검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중엔 패러디도 있고, 제목만 갖다 쓴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영향력은 찾기 쉽지 않다.

하나하나 다 보면서 희곡과의 비교를 한다면 무척 흥미롭고 이색적인 작업이겠으나, 박사 논문을 쓰는 게 아닌 바에야 이러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여기서는 1948년에 만들어진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을 한번 보자. 왜 굳이 이것으로 하느냐 하면, 흔히 햄릿에 대한 가장 위대한 해석자 중 한 사람으로 로렌스 올리비에를 꼽기 때문이다.

위 영화는 『햄릿』을 영화화한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점이 있는데, 바로 연극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렸다는 점이다. 관객의 시선을 따라 극이 진행된다. 연극이 무대를 향한 2차원적 시야라면 영화는 그 특성을 살려 카메라워크가 3차원적 시야를 유지한다는 특징이 있지만 그 유의미성은 여전하다. 가장 정통적인 연기와 발성으로 만들어진 희곡인 만큼 ‘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중세-근대 사람들은 저렇게 연기하고 공연했겠구나’라는 근거없는 확신까지 드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그대로 공연한다면 아마도 러닝타임은 6시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로렌스 올리비에는 많은 장면과 대사를 잘라내야 했다. 그 잘려진 부분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역시 원작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정리하기 위해 다시 말씀드리자면, 아무튼 희곡은 문학의 장르 중에서도 무척 특이한 분야다. 그런 특성 때문에 걸출한 희곡들은 영화화도 반복되는 편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오히려 원작이 갖는 의미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여러 편들의 영화들을 비교 감상하다보면 감독들의 취향이 보이게 되고, 그 교차점들에서 원작의 무게감이 진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감동을 제대로 느끼려면 원작을 읽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말이다.
 / 홍훈표 작가(exomu@naver.com)
 
 
■자유기고가 홍훈표
·연세대에서 경제학 전공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 단막뮤지컬 <버무려라 라디오> 극본 집필
·지촌 이진순 선집 편찬요원
·철학우화집 『동그라미씨의 말풍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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