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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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제자리 걸음인데, 세금은 점점 오르고 불안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지진 지역의 복구를 위한 부흥세를 이미 걷기 시작한데다 머지않아 소비세가 5%에서 10%까지 오르게 돼 심리적 압박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들은 가난해 보인다’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요즘이다.
일본의 샐러리맨들은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아베노믹스 바람’에 적지않은 기대를 했다. 지난 4월 정도까지만 해도 풍성한 여름 보너스를 예고하는 목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휴가철이 돼보니 보너스가 오른 곳은 엔저 효과를 본 자동차 생산 업체 등 일부 대기업에 불과했다.
전체적인 보너스 규모는 2~3년 전에 조금 늘었지만 여름 휴가철에 국내외 여행객의 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장기 불황 속의 엔저 악재가 해외로 떠나려는 일본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증폭은 여름철 가족 여행마저도 주춤하게 만들고 있다.
휴가 보너스의 쓰임새가, 여행에서 저축과 ‘자기 투자’로 급격히 쏠리고 있는 분위기다. 일본의 샐러리맨들은 대부분 30~40년 장기 융자로 내집 마련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이자 부담을 덜기 위해 보너스를 탈 때마다 50만 엔, 100만 엔씩 원금을 갚아나간다.
40대 은행원인 일본인 친구는 최근 6개월치 보너스로 140만 엔을 받았는데 70만 엔은 적금, 50만 엔은 주택 융자를 갚는데 썼다고 했다. 이 친구는 “여름 휴가를 제대로 보내지 못해 식구들의 불만도 많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앞으로도 여름 휴가 때 제대로 돈 쓰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미혼인 20대 젊은이들의 여름 보너스 투자 방식도 눈길을 끈다. 예전과 달리 평생 직장의 개념이 많이 옅어진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은 한두 번 정도의 전직을 염두에 두고 목돈이 생길 때마다 미래를 위해 자기 투자에 힘을 쏟는 경우가 많다.
보너스를 받을 때마다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을 한다거나 이직 때를 대비해 그와 관련된 자격증을 미리 따기 위해 노력하는 등 일찌감치 불안감 해소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35도를 넘나드는 8월 폭염을 에어컨 바람으로 견뎌내고 있는 일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지금은 여행이 아니라 저축할 때”라고 말한다.
/ 도쿄(일본) = 양정석(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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