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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1993년, 영화 <쥬라기 공원>의 특수효과는 20년 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공룡들의 모습이 절로 탄성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단체관람의 형식으로 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만큼 영화는 교육적인 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 했다. 등장하는 아역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해서 객석에 앉아있는데도 함께 공룡에 쫓기는 느낌이 들 정도다.
초반, 말콤이라는 수학자가 카오스 이론을 예로 들어 걱정을 하는 장면이 있다. 제프 골드블럼이 맡았던 이 수학자는 ‘동경의 나비가 한 번 날개짓 했더니 LA에 태풍이 불더라’는 유명한 문구를 인용한다.
그가 의도한 바는 ‘공룡들을 통제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증명하려는 것이다. 아주 작은 변수 하나만으로 큰 변화가 따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도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만다. 사실 원작인 마이클 클라이튼의 소설에서 말콤의 주장은 저리 단순하지는 않다. 말콤은 카오스 이론에서 시작해, 만델브로트의 프랙탈까지 상세히 논한다.
영화에서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이 빠진 이유는 ‘실질적으로 영화를 풀어가는데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이는 옳은 판단이었다. 영화에서 너무 심오하게 과학-수학적 논쟁을 벌이는 것은 무리였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공룡의 제작(?)이나 공원의 관리 등 여러 분야를 토론하는데 프랙탈 이론을 유용하게 사용한다. 그만큼 소설과 영화가 보이는 간극은 이 ‘쥬라기 공원’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아무튼 당시만 해도 프랙탈 개념은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터였다. 그런 점에서 ‘쥬라기 공원’은 과학-수학 인식의 확산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니 SF 장르의 좋은 예라고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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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탈이란 간단히 말해 ‘전체와 부분이 상통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눈송이를 현미경으로 바라보면 전체 눈송이 하나의 모습이 작은 가지들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부분과 전체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을 ‘자기 유사성’이라고 한다. ‘자기 유사성’은 자연계 곳곳에 드러난다. 예를 들어 리아스식 해안선, 동물의 혈관 분포, 나뭇가지의 모양, 성에가 자라는 모습, 산맥의 형태 등이 모두 그렇다. 더 나아가 우주가 프랙탈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되는 것이다.
프랙탈 이론은 프랑스 수학자 만델브로트가 1975년 제창했다. 「영국의 해안선 길이가 얼마일까?」라는 논문이 그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재느냐에 따라 그 길이는 무한대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이 논문은 나중에 프랙탈 이론을 연구하는 수학자들이 두고두고 찾아볼 정도로 영향력이 강했다고 한다.
아무튼 ‘전체와 부분이 상통한다’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이 자연에 간섭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 우주는 프랙탈로 가득차 있는데 그 중 아주 일부분이라도 변화가 오면 전체의 모양도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설-영화의 재앙은 분명히 이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역시 자연에 간섭하며 살아가야 한다. 도로를 만들고, 터널을 뚫고,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까지 간섭해야 하고, 어디는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 홍훈표 작가(exom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