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vs 영화] '용의자 X'
[소설 vs 영화] '용의자 X'
  • 윤빛나
  • 승인 2012.10.2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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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와 '한국 정서' 맞닿으면?
▲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왼쪽)과 영화 <용의자X> 포스터     
 
 
[독서신문 = 윤빛나 기자] 1985년 『방과후』를 통해 정식 작가로 데뷔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치밀한 구성과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가 특색인 소설들을 여럿 발표하며 '미스터리의 살아있는 거장'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은 제134회 나오키 상 수상작으로, 일반적인 일본 추리소설 패턴과는 달리 잔혹함이나 엽기 호러를 배제하고 사랑과 ‘헌신’이라는 고전적이며 낭만적인 테제를 따른다. 이런 주제는 식상하다는 선입견을 피하기 어렵기 마련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로처럼 섬세하게 얽혀 예측하기 힘든 사건 전개와 속도감을 더하는 구어체 진술 방식을 통해 우려를 가볍게 불식시켰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천재 수학자(이시가미)는 자신이 남몰래 사랑하는 여자(야스코)를 위해 그녀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감추려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한다. 이시가미는 야스코를 시련에서 구해내는 일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은 일본에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돼 호평받은 바 있다. 국내 개봉 당시에도 9만 4천여 관객을 동원했고, 많은 관객들이 원작을 찾아 읽게 만들었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랬던 이 작품이 한국 감독, 한국 배우들을 만나 새로운 형태의 영화로 태어났다.

지난 10월 18일 개봉한 영화 <용의자X>는 이미 나와 있는 일본 영화를 의식한 듯, 다소 과감한 변형을 꾀했다. 이시가미 역은 류승범(‘석고’ 역)이 맡았고, 야스코 역은 이요원(‘화선’ 역)이 연기했다. 보다 한국적인 정서를 입은 영화에서는 소설과 어떤 차이점들이 보이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 영화 <용의자 X> 스틸컷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는 어디로?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요 인물인 물리학자 '유가와'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이 두 남자의 두뇌싸움에 집중하고 스릴러적인 요소들을 강조했다면, <용의자X>는 원작에서는 많이 드러나지 않았던 수학자의 감정을 키워드로 보여준다. 방은진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원작처럼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모두 존재한다면, 이미 일본에서 영화화된 작품과 변별력이 없다. 워낙 충실하게 만들어진 일본영화가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물리학자 캐릭터를 없앴다"고 설명했다.

대신 방 감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이 작품을 읽고 울었다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이 사건에 연루된 동력은 바로 사랑이다. 원작 제목에 들어가 있는 '헌신', 또는 숭고함을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말해 영화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결국 원작 팬들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물리학자 ‘유가와’의 삭제는 주인공 ‘석고’의 공허하면서도 숭고한 사랑 쪽에 무게감을 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각도가 살짝 틀어진 셈이다. 추리 장르의 박진감은 다소 잃었지만, 대신 ‘가장 큰 사랑’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을 조명하는 인간적인 영화가 됐다.

감독의 말처럼 원작 소설이 '범행이 어떻게 들통이 나고, 판독이 되느냐'에 초점을 맞췄다면, 한국 영화는 '이런 사랑이 가능하긴 한가'에 대한 부분을 좀더 절실하게 묻는다. 결국 알리바이 자체보다는 그 알리바이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집중하게 됐다.
 
 
▲ 영화 <용의자 X> 스틸컷    


‘사람 냄새’를 불어넣은 인물들
 
이시가미의 헌신적인 도움에도 처음에는 파트너로 생각조차 하지 않는 야스코에 비해, 화선에게는 인간다운 면모가 좀더 불어넣어졌다. 이성으로서의 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신경을 쓴다. 그런 면에서는 야스코에 비해 화선에게 감정이입하기가 보다 쉽다.

특히 폭력을 일삼는 전남편이 화선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왔을 때의 공포감, 결국 죽이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영상화되면서 좀더 ‘공감하기 쉬운 장면’이 된 듯하다. 소심하고 어두운 사람인 석고의 “죽였나요? 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라는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화선의 마음도 관객 입장에서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정 많고, 따뜻한 그녀이기에.
 
 
▲ 영화 <용의자 X> 스틸컷     


『용의자 X의 헌신』이 다른 추리소설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많은 판매고를 올린 이유는 아마 두뇌 싸움뿐만 아니라 한 여인에 대한 우직한 마음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부분을 더욱 부각시킨 영화 <용의자X>는 그래서 한국적인 느낌이 강하다.
 
"화선씨가 나타나기 전까지 저는 매일 죽음만을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수학만이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저에게 제 머리가 점점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고 있는 그 순간 저에게, 화선씨가 찾아왔습니다"라는 석고의 편지는 이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를 대변한다. 허를 찌르는 트릭, 복잡한 추리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용의자X>는 '이런 사랑이 가능한가?'라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질문거리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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