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리집 해결사
당신은 우리집 해결사
  • 천상국
  • 승인 2007.08.1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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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상국

어김없이 새벽5시 가까이 기상, 세수, 몸단장 은 대충 하고 식구들 아침 준비 관계로 주방 문 을 살며시 열었다. 어제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온 막내아들 녀석 밤찬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아내가 미리 씻어놓은 밥쌀 을 전기밥솥 에 넣고 전기 코드에 연결 한다. 이른 아침 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방금 한 밥이 먹기에 훨씬 수월 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내의 지혜로운 배려이다. 어제 먹다 남은 국, 찌개를 데우고 식탁 닦고 반찬, 수저, 젓가락 배열 하면 준비는 거의 마친 상태, 내가 아침 마다 가족들에게 제공 했던 유일한 반찬 은 계란찜, 계란후라이, 계란말이,  닭 하고 전생 에 원한 진 것도 없는데 자나 깨나 계란으로 손 이 간다. 내가 시골에서 중학교 다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요즈음이야 도시락이 없지만은 그 당시 어머니께서 싸주신 알루미늄 도시락 속에(그때에는 양은벤또 라 불리었다) 하얀 쌀밥 위에 놓여 있는 계란후라이 을 발견 할 때면 친구들에게 뺏길까 바서 우선 먼저 계란부터 입으로 들어갔었다. 평상시 에는 밥과 유리병 속에 담겨 있는 김치뿐이다. 몇 칠 계속 이어지면 어머니 주머니 사정이 호전됨을 알 수 있다. 오늘은 별식을 해볼 마음으로 김치 냉장고에 묵혀 있던 작년 김장 김치를 꺼내 짠 기와 군내를 최대한 없애기 위해 깨끗한 물에 몇 번 행군 뒤 먹기 편하게 잘게 썰어 적당한 냄비에 넣고 여러 종류의 양념과 함께 볶는다.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 입에 맞게 설탕 을 조금만 넣어도 아내는 귀신 같이 알아내곤 못 마땅한 눈치로 궁시랑,궁시랑 된다. 어린이집 교사인 둘째아이가 제일먼저 일어나 아침 인사를 필두로 가족들 기상 은 시작 된다. 오늘은 둘째 아이가 당직 서는 순번으로 출근을 서두른다.  식당일을 마친 나는 출근 기사로 변신 둘째를 태우고 어둠속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따라 어린이집 을 향해 돌진한다. 드디어 1호차 출발이다. 무사히 둘째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한강다리 위에서 여명을 맞는다. 저 멀리 동쪽 하늘에 벌겁게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면서 소리 내어 외쳤다. 해님이시여, 오늘 막내아들 녀석 중간고사입니다. 고교입학 후 처음 보는 시험인지라, 아마 지금쯤 이면 상당히 초조하고 긴장 할 겁니다. 어제 밤 뜬눈으로 책과 씨름한 아들 녀석 에게 용기를 주시고  밤새 내내 동고동락 한 아내 에게도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주십시오. 집에 도착, 아들 녀석 을 태우고 학교까지 가는 2호차를 끝내고 아침식사 을 마치면  드디어 마지막으로 아내와 큰아이를 태우고 3호차를 움직인다. 큰아이는 집 근처 어린이집 교사이고  아내는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 가족 전용기사 역할 을 충실히 마치고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무실로 차를 서서히 움직인다. 나이 들어감을 아쉬워하거나 속앓이를 하면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고리타분한 인생에서 벗어나 나를 필요 로 하는 우리 가족들이 있는 한  성심성의껏 살아갈 생각 이다.  자영업을 하고 시간 조절이 용이 하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물론 수입은 예전만 못하다. 경제적  으로 부족한 부분을 육체적으로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다. 핸드폰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둘째 아이다. “아빠, 주민등록등본 한통만 부탁 하구요 월급 찾을 때 삼심 만원만 뽑아주세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두 아이 월급날이다. 매달 25일 은 정례적으로 은행가는 날 이다. 두 아이 통장에서 차곡차곡 돈이 불어나는 것을 볼 때 마다 내 마음 역시 풍요로움을 만끽한다. 남의 집 으로 보내기 전까지 열심히 모으면 고스란히 돌려주어 시집가서 종자돈으로 유용하게 사용 할 것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일러두었다. 사무실에 도착 어제 거래처에 물건 출고상황 을 확인 후 느긋하게 모닝커피를 마신다. 잠시 동안 나만의 달콤한 시간이다. 사무실을 나와 수금 관계로 거래처를 방문 하지만 혹시나 가 역시나 다. 기약 없는 내일 뿐이다. 날이 갈수록 수금이 더 어려운 것 같다. 그 많던 돈 다 어디로 간 걸까, 영세상인 들은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 인데 나라님 네들은 강 건너 불구경 이니 언제쯤 이면 살기 좋고 편안한 세상이 올까, 자조 섞인 씁쓸한 웃음만 짓을 뿐이다. 막내 녀석 시험 결과가 궁금하여 집으로 전화를 해 보았다.아내 음성이 시원치가 않다. 첫술에 배 안 부른다. 쉬엄쉬엄 하면 되지, 너무 걱정 하지 말라는 위안의 말 을 전하고  하늘 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아침에 좋던 날씨가 오후부터 는 엎친데  덮친다고 꾸물꾸물 되더니 금방 이라도 한바탕 퍼 부울 낌새다. 그때 마침 대전에서 갈빗집 대형 식당을 운영 하고 있는 친구 녀석 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야, 이 친구 요즈음 근황이 어떠냐 하면서 말미 에는 전부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게 아닌가? 남 속도모르고   “야, 이놈아 팔자가 늘어져 주채 할 수가 없을 정도다” 무거웠던 감정을 한순간에 퍼부었으나 여전히 개운치가 않았다. 모처럼 친구 전화에 옹졸하게 처신 한 것이 못내 미안함 마음이 들었다.  어느 정도 거래처 일을 마무리 하고 동사무소에 들러 서류 받고 동네 근처 가까운 은행 두 군데를 돌고 보니 어둠은 벌써 도시 구석구석에 내려앉았다. 빗줄기 도 간간히 보이더니 이내 굻어지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유료주차장에 주차 하고 우산 위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조금 멀리 두고 몽롱한 정신으로 하나 둘씩 켜진 간판 불빛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슈퍼 근처 올 무렵 핸드폰 소리가 들려 열어보니 아내였다. “여보, 비도 오고하니 당신 좋아하는 부치게 해서 먹읍시다.” 들어오실 때 막걸리 사가지고 오라는 이야기다. 그래 이 세상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은 당신 말고 누가 있겠소, 갑자기 정신이 번뜩이고 몸에서 생기가 도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저씨 오늘 들어온 막걸리 한 병 주세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부치게 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돌기 시작 한다. 슈퍼를 나와 몇 발짝 오는데 문뜩 내일 아침 아이들 에게 짜장 볶음을 해주고 싶었다. 아침마다 먹었던 계란 요리가 얼마나 지겨웠을까? 무심 했던 생각을 반성하면서 몸은 벌써 슈퍼를 향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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