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vs 안드레아 아놀드 <폭풍의 언덕>
[독서신문 = 윤빛나 기자] ‘불멸의 로맨스’라는 수식어와 마치 한 덩어리인 양 붙어 다니는 『폭풍의 언덕』이 극장가에 걸렸다. “또?”라는 의문을 표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이 아홉 번째 영화화다. TV, 라디오, 공연매체까지 범위를 넓히면 무려 44회나 리메이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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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출간 당시에는 구성이 복잡하고 비도덕적인 관계를 다뤘다는 이유로 혹평을 면치 못했다. 언니의 『제인 에어』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데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에밀리가 죽고 반 세기가 지나서야 작품 속 남녀간의 격정적 사랑, 복수 등 ‘인간의 본성’이 빛을 발했다. 이후 『폭풍의 언덕』의 비극성은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비교되면서 '영문학 3대 비극'에 꼽혔으며, 서머싯 몸이 뽑은 '세계 10대 소설'의 반열에 오르며 '고전 로맨스'로 자리잡는다.
28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폭풍의 언덕>을 연출한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코멘트를 보면, 그동안 영화화된 작품들과 차별되는 부분이 어디인지가 극명해진다. 그는 "자연은 <폭풍의 언덕>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될 겁니다. 자연은 아름다움과 동시에 위로를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연은 잔혹하고 이기적이며 파괴적인 힘이 있습니다. 히스클리프는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바로 자연의 증거입니다. 이 커다란 자연이라는 존재는 <폭풍의 언덕>의 가장 근본적인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했다. 안드레아 감독의 <폭풍의 언덕>에는 ‘자연’이 새로운 주인공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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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영화는 빛, 바람, 비, 흐린 하늘 등 원작의 지배적인 이미지에 시선을 놓치지 않았고, 휘몰아치는 바람과 자욱하게 깔린 안개, 축축하고 습한 공기, 때리는 소리, 휘파람, 눈물 소리 등 촉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관객들의 오감을 파고든다. 어린 시절 읽었던 『폭풍의 언덕』이 손 끝을 간질이는 느낌이다.
인간의 삶 속에서 보다 근원적인 것을 고찰하기 위해 '극단'을 부각시키는 역설적 방법론을 택한 원작의 플롯은 영화에서도 변함이 없다. 영국 요크셔 지방, 황량한 들판의 언덕 위에 외딴 저택 워더링 하이츠가 있다. 주인 언쇼는 폭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밤, 고아 소년 히스클리프를 데려온다. 언쇼의 아들 힌들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앗아간 히스클리프를 미워한다. 딸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어느새 사랑에 스며든다. 하지만 언쇼가 죽은 후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학대하고, 캐서린마저 근처 대저책의 아들 에드가와 결혼하자 히스클리프는 말없이 워더링 하이츠를 떠난다. 몇년 후, 히스클리프는 복수의 의지를 가득 머금고 부자가 돼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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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히스클리프는 처음으로 흑인 배우의 탈을 썼다. 원작 소설의 화자는 워더링 하이츠 저택의 가정부 ‘넬리’지만, 이번 영화에는 히스클리프 위주로 장면이 전환된다. 하지만 대사는 부쩍 줄었다. 대사가 줄었으니 영화가 친절할 리 없다. 배경음악도 거의 없다. 오로지 언덕을 누비는 바람 소리, 스산한 기운만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이 기운은 히스클리프의 허무한 인생과도 일맥상통한다.
매우 오랜만에 4:3 아날로그 TV 비율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평소 접하던 영화들에 비해 세로로 긴 형태다. 시야가 좁아지고, 집중해야 할 부분이 분명해진다.
인간 내면의 세계를 고찰하고, 인간의 근본적인 고민과 갈등을 내세웠던 1847년 한 여성 작가의 글은 2011년 한 여성 감독의 손을 거쳐 빳빳한 새 옷을 차려 입었다. 그렇게 영화 <폭풍의 언덕>은 활자로 존재했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소설의 이미지를 우리의 눈에 물결치게 하고, 손에 쥐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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