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돌씨 부부 탐석기
애돌씨 부부 탐석기
  • 김동민
  • 승인 2005.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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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 (소설가 · 문학평론가)


애돌 씨는 수석광이다. 말 그대로 돌에 미쳤다. 시간만 났다 하면, 시간이 안 나도, 어떻게 해서든 탐석에 나선다. 산이고 계곡이고 강이고 바다고 심지어 실지렁이 같은 작은 하천이고 가릴 것 없이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왕용이란 근사한 이름 대신 스스로 애돌이라고 호(號)를 지었다.

 지하실에는 아예 돌방을 차렸다. 그곳은 소우주 같다. 산수경석·추상석 ·물형석 ·색채석 등등 온갖 형태와 빛깔의 수석이 앞다퉈 뽐낸다. 수석과 함께 할 때 그는 시간도 공간도 초월한 신적 존재가 된다. 이런 애돌 씨지만 수중에 넣었던 천하를 잃어버린 듯한 충격과 슬픔을 겪게 됐으니 그놈의 양석(養石) 탓이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어렵사리 얻은 (지리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어 작은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채취하지 못한다.) 쌍봉이었다. 주름도 잘 잡히고 석질도 그만이고 은은한 청색인 데다 단봉도 아닌 두 개 봉우리.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약간 탁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이지만 햇빛에 쬐고 빗물에 씻고 바람을 쐬면 내밀한 빛이 투명하게 우러날 것이다.

 애돌 씨는 그것을 담장 가까운 곳에 신주 모시듯 모셔 두었다. 현관 앞 개집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으로 그림자가 얼씬대기만 해도 사납게 짖어대는 ‘워리’는 든든한 파수꾼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날부터 애돌 씨, 출근할 때나 귀가할 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들여다보곤 했다. 양석 효과도 커서 시간이 흐를수록 명석(名石) 기품을 갖춰갔다.

 그런데 하루는 보일러가 고장났다. 아내는 사람을 불렀고 꽤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래도 보일러가 정상 가동되니 돈은 아깝지 않다고, 아내는 일부러 회사로 전화까지 걸어 말했다. 애돌 씨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마침 회식이 있어 거나하게 취한 애돌 씨, 대리운전자 시선도 아랑곳 않고 차 속에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워리는 변함 없이 낑낑 하며 바깥 쥔을 맞았고 정원 대추나무 가지에 걸린 달이 환상적이었다.

 애돌 씨는 이제 완전히 버릇이 돼버린 대로 담장 근처 애석(愛石)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애돌 씨는 눈을 닦고 다시 닦았다. 어둠 속이라 얼른 발견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었다. 이제 눈을 감고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없다! 틀림없이 그곳에 있어야 할 돌이 없다. 그는 돌덩이로 뒤통수를 가격 당한 듯했다. 방금막 현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남편 귀가를 맞이한 후 다시 안으로 들어간 아내부터 불렀다. 애돌 씨는 한참 동안 그 수석을 완상하다 거실로 들어서곤 했으므로 늘 그런 식이었다. 아내는 곧 마당으로 나왔다.

 “어, 어찌 되, 된 거야? 도, 돌이 어, 어디로 가, 갔냐구? 다, 당신이 치, 치웠어? 그렇지? 다른 곳으로 오, 옮겨 노, 놓은 거지?”
 “아, 여, 여보. 이, 이 일을 어, 어떻게….”
 아내는 첫애가 경기를 일으켰을 때만큼이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워리는 주인 내외를 보고 반갑다고 예의 그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귀신이 복장 두드릴 노릇이었다. 집안에 놔둔 돌이 감쪽같이 증발하다니. 도둑이 든 흔적은 아무 데도 없는데. 그 경황 중에 애돌 씨 머릿속을 치는 게 있었다. 고장난 보일러. 오늘 이 집안에 들어온 유일한 외부인, 보일러공. 아내로부터 다른 내방객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한 애돌 씨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그 사, 사람이 확실해요. 어,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아내는 벌겋게 흥분한 낯으로 그러나 울먹이듯 계속 더듬거렸다.
 “워리가 으, 으으렁거리는데도 얼른 나가지 않고 마, 마당가에서 계속 서, 서성거리더니….”
 하필 그때 거실에서 전화벨 소리가 났고 아내는 전화를 받으러 안으로 들어왔다가 잘못 걸려온 전화를 끊고 다시 나와 봤더니 그새 보일러공은 가버리고 없더란다.
 “그, 그놈이 도, 돌을 아는 노, 놈이 트, 틀림없어. 다, 당장 저, 전화햇! 저, 전화번호는 알지?”

 애돌 씨는 턱을 덜덜 떨며 아내를 다그쳤다. 그런데 그런 순간에 더 침착한 게 여자인 모양이다. 아내는 흡사 철없이 보채는 어린애 달래듯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요, 여보. 증거가 없잖아요. 그 사람이 가져갔다는….”
 애돌 씨는 찬 얼음덩이를 등에 넣은 것처럼 번쩍 정신이 났다. 그랬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없다. 아무리 심증은 가도 물증이 없다. 지각없이 함부로 굴었다간 도리어 상대로부터 명예훼손 따위로 되감길 수도 있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 보일러공이 범인이 아니라면…. 아냐, 맞아. 그 자가 가져간 거야. 그렇지만 그게 아니면?   그밤에 애돌 씨는 엉엉 울었다. 그 옆에서 아내도 꺼이꺼이 울었다. 애돌 씨가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찾은 건 보름이 지나고 나서부터였고 그에겐 새로운 소망, 아니 오기가 뿔처럼 솟았다. 반드시 그 수석보다 더 훌륭한 쌍봉을 구하리라는.

 애돌 씨의 탐석 횟수는 더욱 빈번해졌다. 회사에 나가 서류철을 뒤적거릴 때도 컴퓨터에서 자료를 검색할 때도 그저 나타나 보이는 게 쌍봉이었다. 결국 연가를 내기에 이르렀다. 돌 주우러 가기 위해 연가를 냈다면 완전히 미친 사람 취급받을 일이었다. 애돌 씨는 처가에 일이 있다고 둘러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내와 함께 행동하게 되었다. 아내 또한 애돌 씨만큼이나 쌍봉에 강한 집착을 나타났다. 우리 두 사람 하늘 두 쪽 나는 일이 있어도 수석계가 발칵 뒤집힐 쌍봉을 찾자고.

 그러나 아무래도 남의 이목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탐석지를 먼 곳으로 정했다. 그날 새벽같이 배낭과 쇠꼬챙이 등 탐석 도구를 챙겨 출발했다. 충북 단양 쪽이었다. 남한강 댐 건설로 돌밭이 수몰되었다곤 해도 그래도 수석의 황무지로 변한 건 아니었다. 석운(石運)이 있으면 정말 기찬 쌍봉 한 점은 발견하리라 기대해마지 않았다. 부부 둘이서 돌밭에 과일과 마른 명태 그리고 맥주 한잔 부어놓고 조촐하나마 정성껏 석신제(石神祭)까지 지냈다.

 예상한 대로 예전 돌밭이 아니었다. 수석감이라고 할 만한 어떤 것도 쉬 발견되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 즈음 가지고 간 김밥을 나눠먹고 보온병에 담아간 커피를 마셨다. 아내 얼굴에서 점차 포기하고 싶다는 기색이 완연해졌다. 애돌 씨도 그랬다. 하지만 도둑맞은 쌍봉을 생각하니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기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것은 한참 하류 쪽을 더듬고 있을 때였다. 거기는 상류 돌보다는 수마가 잘된 대신 돌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니 검은빛이 도는 돌도 그만큼 드물었다. 맨 처음 그 돌을 발견한 사람은 아내였다.
 “여, 여보! 저, 저기….”
 두 사람은 십 미터쯤 간격을 두고 하류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저만큼 앞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던 것이다. 애돌 씨 입에서도 감탄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긴 약간 뻘밭이었다. 그 뻘구덩이 속에 봉우리 두 개가 봉긋 솟은 돌 하나가 이보란 듯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게 아닌가. 쌍봉. 뻘흙 속에 묻혀 있어 아직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크기도 알맞고 무엇보다 두 개의 봉우리 윤곽이 그린 듯 또렷하여 천하제일석이란 말이 절로 나올 만했다.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가슴이 마구 떨리고 다리가 한없이 후들거렸다.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수석에 입문한 지 어언 이십 수년, 그동안 참으로 많은 돌을 주웠고 많은 돌을 버렸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은 오늘을 위한 전주곡이란 생각이 들었다. 애돌 씨는 쇠꼬챙이로 약간 파묻혀 있는 그 돌을 캐려고 허리를 굽혔다. 제발 밑자리도 좋았으면.

 그런데… 애돌 씨는 손끝에 전해지는 감촉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의 묵직함이 아니라 마치 풍선을 만지는 듯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혹시라도 돌이 쇠꼬챙이 끝에 상할세라 조심조심 돌 언저리부터 파들어 가다가 돌에 꼬챙이가 닿는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파묻혀 있기 마련인 돌이 어쩐 셈인지 한순간에 벌렁 뒤집혀지는 게 아니냐. 그것도 꼭 종이 한 장같이 가볍게.

 그리하여 마침내 알몸을 완전히 드러낸 돌-아, 그건 돌이 아니었다. 애돌 씨보다 먼저 그것의 정체를 알아챈 사람이 또 아내였다. 그리고 그것의 본질상 남자인 애돌 씨보다 여자인 아내가 앞서 파악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아, 여, 여보! 이, 이건 도, 돌이 아니고….”
 “…!?”
 “브, 브…래…지…어….”
 오, 맙소사. 하느님, 아니 돌밭이여. 돌밭이여. 그것은 브래지어였다. 그게 검은 뻘흙에 덮여 그런 모양을…. 한데 그 순간, 돌밭에는 난데없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핫! 으하하핫! 아내의 외마디가 터졌다. 여, 여보! 당신…? 하지만 그 소리는 이내 다시 애돌 씨 말에 덮여버렸다. 애돌 씨는 두 눈에 눈물이 괼 만큼 웃어 제치며 이랬던 것이다.
 “여보, 이 세상 제일 가는 명석은 바로 당신이었어. 그깟 돌덩이 하나 그만 기억에서 지워버리자구. 내 영원한 일생일석 당신이 있잖아.”            
독서신문 1393호 [2005.11.27]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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