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속에 꽃핀 인간애
자연주의 속에 꽃핀 인간애
  • 김경배 기자
  • 승인 2007.06.0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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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작가
60, 70년대 한국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농업중심의 세계관에 종말을 고하고 ‘잘살아보세!’란 구호아래 본격적인 공업국가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농현상이 극심해졌으며 ‘도시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지금은 덜하지만 명절 때만 되면 ‘고향으로 고향으로’ 향하는 수많은 인파는 바로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추억의 고향을 향한 것이다. 이제는 지나간 과거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 고향은 할머니와 부모와 우리 이웃들이 정겹게 맞아주는 향수를 남겨놓았다.
 
▲ 『남자의 눈물은 뜨거웠다』란 수필집 펴낸 한명숙 작가     ©독서신문
『남자의 눈물은 뜨거웠다』란 수필집 펴내
최근 『남자의 눈물은 뜨거웠다』란 수필집을 펴낸 한명숙 작가는 그러한 시골의 아련한 추억을 자연스럽게 목가풍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골출신이어서 일까? 고향의 정취와 향기가 물씬 풍기는 그의 수필 하나하나에는 그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때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그는 운동을 하기도 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상, 여자라는 이유로 더 이상의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워질 것 같아 스스로 내린 결단이다. 하지만 운동선수가 된 후에 찾아온 것은 외로움이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고달픈 훈련과 가족들과 홀로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데서 오는 외로움. 하지만 이러한 고달픔과 외로움이 그를 더욱 성숙시켰다.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틈틈이 편지와 일기를 쓰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 시인이자 수필가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의 끊임없는 배움의 자세가 한몫 한 것은 당연하다.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글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 각종 문학단체나 문인들을 찾아가 촌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한 결과로 문인의 길로 접어들었고 수필집까지 펴냈다.
그는 수필보다는 시를 주로 써왔다. 주변에서도 책을 출간했다고 하니 전부 시집을 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수필은 시기를 놓치면 구문이 될 것 같아 수필을 먼저 내놓게 됐다고 설명한다.

자연의 순리에 입각한 자연주의
그의 작품에는 자연이 깔려있다.


어릴 적,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여름밤을 떠올리면 웃음이 번진다. 매캐한 연기를 싫어하면서도 마당에 누워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세는 즐거움에 어쩌다 귓가에 앵앵거리는 모기소리도 밉지 않았다.
-「모깃불 연가」중에서
 
지난여름이었다. 시골 천정 집 울타리에 커튼처럼 드리워진 잎사귀 사이로 연둣빛 몸통에 보라색 띠를 두른 꽃이 주렁주렁 달린 식물을 보고 빠져들었다. 화려한 멋은 없지만 은근한 아름다움과 신선함마저 느끼게 하는 그 꽃을 건드리자 코끝을 싸고도는 알싸한 향기가 퍼져 나왔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것을 어머니는 더덕이라고 했다.
-「소리없는 종」중에서
 
벚나무 이파리가 밤나무 이파리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 곳으로 고정시킨 내가 밤나무 뒤에 숨어있다. 밤나무 가시에 찔리는 것이 두려워 주춤대는 아이처럼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손짓을 한다. 어서 이리 나와 보렴, 여기는 마음껏 뛰어 놀아도 찔리지 않을 거야.
-「잎새 비 내리는 오후」중에서
 
위의 예시문만이 아니라 모든 작품에 강물처럼 이어져 있고 그렇게 마주 선 자연에서 감격하며 눈물을 흘리고 웃으며 자신과 교류하는 고뇌가 보이는 것이다.
이와 관련 수필가 안재진씨는 “자신과 교류하는 고뇌에서 인간의 원형을 찾으려는 간곡한 눈빛이 간직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자연의 신성을 직시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진정성을 찾으려 고민한다”고 평한다.
 

▲     © 독서신문
자연속에 존재하는 인간중심주의
하지만 단순히 그의 글들이 자연주의에만 몰입했다면 그것은 ‘죽은 글’일 수밖에 없다. 사물을 바라보는 동력은 하나의 밀집된 현상이 아니라 그 사물을 통해 우리가 그리는 그 무언가로 연결될 때 진정한 문학으로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그러한 면에서 ‘죽은 글’이 아니다. 그의 글에는 항상 자연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속에 자주 등장하는 부모나 주변 인물들. 그들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고향의 정취가 함께하기 있기 때문이다.
 
시래깃국에서는 어머니 냄새가 난다. 고향 냄새가 난다. 그 맛으로 그리움도 아픔도 달래며 힘을 키우시던 어머니. 마술사 같던 어머니는 요즘 시래기 마른 잎처럼 바삭거린다. 가끔 내게 기대는 어머니 목소리에 눈물 훔치지만 마음은 밤마다 고향으로 달려가 어머니의 친구가 되어 드리고 싶다.
-「시래깃국」중에서

순간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아 바지를 걷고 논으로 들어갔다. 그냥 기다리라는 아버지 말씀을 외면하고 서툴지만 서너 개의 모를 떼어내 꼭꼭 눌러 심었다. 얼마 하지 않아 허리가 아팠다. 나는 차마 일어설 수가 없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아버지 모습을 곁눈질해가며 어둡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다랑이 마을」중에서
 
시래깃국에서 어머니와 고향의 냄새를 맡으며 밤마다 고향으로 달려가는 마음, 땀으로 범벅이 된 아버지의 무논으로 뛰어들어 마음을 읽으려 했던 것은 자연 속에 서 있다는 뜻이며 그런 눈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자연주의 속에 점철된 인간중심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그의 수필은 즐거운 이야기보다는 어두운 이야기가 많다. 안타까움과 희한, 그리고 추억 속에 저물어가는 고향의 향기.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어두움이 우리의 시선을 더욱 끌어당긴다. 동류의식, 공감대를 형성케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한명숙. 그의 꿈은 소박하다. 부모와 자식과 당신이 아무 탈 없이 오순도순 사는 것. 아내와 어머니로 가족을 품에 안고 함께 애드벌룬을 타는 소박한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 것.(수필가 변해명)
그것이 그가 그리는 삶이다. 그 속에서 자연을 노래하고 주변을 노래하는 것. 스스로 해결하고 견뎌내는 삶을 배우며 알아가는 과정을 자연과의 교감에서 찾아내는 그렇게 욕심 없이 살아가는 그의 삶은 박꽃처럼 여리기만 하다.

한명숙
시인 · 수필가
2002년 「문학산책」수필 신인상
2003년 「수필과비평」신인상
현대수필문학회, 맥심문학회, 군포여성문학동인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청하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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