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중심에 선 발신자
소통의 중심에 선 발신자
  • 이호
  • 승인 2010.03.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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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펭귄뉴스』
▲  김중혁 소설가    © 독서신문

 
[독서신문] 이호 평론가 = 편재(偏在)하면서도 현세의 ‘저 편’의 초월적 절대자는 어느 순간에 특정한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한다. 그 계시는 종종 어떤 메시지로 전달되지만 그것을 해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수신자-해석자의 주관성(해석의지)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메시지-수신자’ 사이의 경로 어딘가에서 해석을 둘러싼 소음이 증폭된다. 최초의 발신자로부터 수신자에 이르는 메시지 전달회로 사이에 숱한 변용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메시지를 둘러싼 해석들은 난마처럼 얽혀 혼돈 그 자체에 가깝다.

이것은 작품의 창조자(기원)인 작가와 그것의 수신자인 독자 사이에 일어나는 ‘발화-수신과정’과도 유사하다.

작가의 작품은 직접 ‘독자-수용자’에게 투명하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작가(신)와 기호로서의 메시지(작품)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말하려고 했던 것과 말해진 것 사이의 분열. 작가의 언술체계와 독자의 이해지평이 서로 다르다는 점 또한 간과될 수 없다.

이 사이에 사회적 공준을 받은 해석자(비평가/연구자)와 전달자(교사/강의자)가 개입되면 사태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자 이제는 원저자, 최초 발신자의 의도를 지우고 해석적 다양성과 전유(appropriation), 의미의 열림을 긍정하며 오독의 생산성을 인정하는 독자반응이론이나 해체론자와 같은 이들의 텍스톨로지(textology)가 등장한다. 

이런 입장에 따를 때, ‘작가-발신자’보다는 ‘독자-수신자’가 훨씬 중요하다. 여기에 미디어론이 가세한다.

맥루한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메시지는 그것을 전달하는 미디어 그 자신이다. 여기서 메시지 자체는 별 의미가 없으며 매개(매체, 장치)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이때 전달의 매개체가 소설이라는 미적 형식일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런 경우 소설이란 어떤 매개 형식인가를 탐구하는 ‘소설론’이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소설론 역시 하나의 세계 해석적 방법이며 소설에 관한 해석의 보편적 패러다임을 세우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즉 ‘소설론’ 또한 하나의 해석체계일 뿐이며 아직도 소설에 관한 해석적 끝장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해석자는 메시지를 특정한 방법이나 참조점에 따라서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이 방법적 체계야말로 그 해석자가 가지고 있는 최초발신자나 발화상황에 대한 이해, 메시지 재료나 메시지 전달방식에 대한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결국 언어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는 메시지를 해석할 수 있게 해 주는 어떤 해석체계(이념, 세계관, 미학관)를 필연적으로 요청하게 되며, 이를 통해 ‘발신자-메시지’의 해석에 관여한다. 이 체계와 해석방법은 등가를 이룰 경우도 있고 적어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발화자는 소통회로의 구조 내에서 발신자이면서 동시에 그 발화를 가능케 한 참조점을 전달하고 있는 메신저로서 이중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김중혁 역시 작가로서 발신자이자 이러한 메신저 역할을 수행한다. 발화자로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그 발화를 가능케 한 참조점을 동시에 전달하는 것이다. 김중혁을 언급하는 이유는 김중혁 소설에서 그러한 소통의 겹구조가 잘 드러내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중혁의 소설에는 주로 특수한 사물들이 등장하고 인물들은 그 사물들을 통해서 다른 ‘어딘가’로 연결된다. 여기서 사물들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인물들은 사물들을 통해 메시지를 해독한다. 작중인물들이 특정한 사물들을 통해서 어떤 세계를 경험(인식)하는 구조를 가진 김중혁의 이야기는 하나의 소설이 되어 작가 김중혁과 독자 사이에 메시지로 기능한다. 전자를 소설내부의 소통법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소설 외적인 소통양식이라 할 수 있다. 소통의 구조를 기반으로 해서 김중혁의 소설이 형성되고, 다시 그것은 독자가 소설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를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김중혁 소설내부의 메시지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소설 속에서 메시지의 내용은 희미하다. 이를테면 「무용지물 박물관」에서 ‘메이비’의 라디오 듣는 법을 통해 화자가 알게 된 것은 무엇인가? 소리를 듣고 상상하는 법을 익혔을 때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화자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소설은 직접적으로 언급해 주지는 않는다.

「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에서 이눅씨가 거주하는 집이 방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눈을 감고 손끝으로 읽는 지도를 통해서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화자가 찾아낸 인생의 새 길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소설은 말해 주지 않고 독자의 해석을 유발한다. 

사물을 통해 세계와 접속하는 이야기들에서 발생하는 의문부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중혁이 제시하는 사물들의 특징과 작동법을 익혀야만 가능하다. 김중혁의 소설을 사용하는 법을 익혀야만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중혁 소설의 인물들이 사물들을 통해 어딘가로 연결된다면, 김중혁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있어 작중인물들이 접촉하는 사물들 그 자체와도 같은 셈이다. 문제는 먼저, 김중혁의 소설사용법을 익혀야만 한다는 점이다.
 
  / 이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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