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vs영화 - 『더 로드』
소설vs영화 - 『더 로드』
  • 강인해
  • 승인 2010.01.2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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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수용소,그래도 그들은 걷는다
 
▲ 소설 『더 로드』표지(좌) / 영화 '더 로드'의 포스터(우)

 
 
[독서신문] 강인해 기자 = “내 목숨을 바꿔서라도 널 지켜내겠어. 반드시 태양이 떠오르는 걸 보여줄 거야”
 
잿빛 세상 속을 두 남자가 걷고 있다. 시커먼 재가 사뿐히 안착할 정도로 툭 튀어나온 광대뼈, 넝마처럼 너덜너덜한 헤진 옷을 두르고 힘겹게 걸어가는 그들이 남긴 발자국에는 ‘절망’이란 단어가 선명하게 새겨진다.
 
불에 타 헐벗은 산, 무너져 내린 건물로 가득한 폐허가 된 도시. 재앙이 왜 세상을 덮쳤냐고 묻는다면 그건 그들도 모른다. 다만 두 남자는 살기위해 따뜻한 남쪽으로 간다. 가늘게 붙은 숨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는 가슴 속 ‘불씨’를 안고.
 
■코맥 매카시의 소설  두 번째로 영화화 되다

▲ 코맥 매카시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작가’로 꼽히는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가 올 초 영화로 탄생했다. 그의 전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2008년 영화화된 데 이어 두 번째다.

『더 로드』는 잿더미로 변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부자(父子)가 굶주림과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길을 떠나는 모습을 그린다. 그 중에서도 아들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매카시는 한 매체의 인터뷰를 통해 『더 로드』는 자신과 아들 ‘존’이 함께 집필한 소설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이의 대사 대부분이 그의 아들이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 거예요?”,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응. 너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 대화는 실제로 매카시와 존이 나눈 대화다.

사실 대화를 나눴던 당시 매카시가 어떤 상황을 떠올리고 어떤 감정으로 아들과 이러한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다. 소설에서도 둘의 대사가 있은 후 바로 연결되는 매카시 특유의 비유와 묘사, 절제된 감정 표현 때문에 무엇인가 따뜻함을 전달받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의 대화는 독자들이 상상하기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부성애’라는 주제를 걸고 제작됐기에 피폐한 배경과 극한에 처한 그들의 모습이 잘 어우러져 이들의 대화 한 마디 한 마디가 ‘부성애’를 겨냥한 듯한 표현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 영화 '더 로드'의 한 장면


 
■열연한 두 배우  관객들 울리다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 역을 맡아 카리스마 있는 전사 연기를 펼쳤던 비고 모텐슨과 13살의 어린 나이로 험한 촬영을 성숙하게 소화한 코디 스미스 맥피의 부자연기는 영화의 백미다.

비고 모텐슨은 끊임없이 걷고 도망쳐야하는 캐릭터에 처음에는 캐스팅 수락을 고민했지만 원작과 시나리오를 접한 후 더 이상 영화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종말의 순간에 포커스를 맞춘 헐리웃 영화와는 다른 원작만의 매력이 시나리오 속에 존재했기 때문.
 
 
▲ 영화 '더 로드'의 한 장면



그는 20kg에 이르는 체중감량을 하면서 영화 속 분장, 의상 그대로 실제 생활을 했다. 코디 역시 아빠 등에 기대 ‘힘들다’, ‘모르겠다’고 일관하는 나약함과 종반으로 갈수록 내면의 강함을 함께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를 충실히 소화해 냈다.

소설을 통해 독자 스스로가 상상한 아이의 모습과 영화 속 코디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도 좋은 감상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생각보다 코디가 지나치게 하얗고 귀여워 잿빛 배경과 일체감을 이룰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희망’이라는 ‘불’을 운반하는 부자의 사명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우리는 ‘불’을 운반한다
소설 속에서 남자는 아들에게 끊임없이 ‘불’을 운반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악(惡)’의 반대의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먹을 것이 떨어지자 타인의 식량을 강탈하고, 심지어 인육을 먹는 인간사냥꾼이 된 사람들의 모습에서 위협을 느꼈다.
 
 
▲ 영화 '더 로드'의 한 장면 



아들은 이들을 ‘나쁜 사람’이라 칭하고 남자에게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자신들은 ‘좋은 사람’으로 남자고 말한다. 가슴 속 ‘불씨’를 죽이지 않겠다는 다짐. 그들이 쉬지 않고 남쪽으로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불’을 운반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불’은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고, 죽음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희망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아이가 또 다른 생존자를 따라가는 계기도 그 남자에게 ‘불’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매카시는 ‘절망’ 속 ‘희망’을 노래하는 듯 했지만 정답을 내리지 않았다.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독자들의 몫으로 돌렸다.
 
 
▲ 영화 '더 로드'의 한 장면



반면, 영화는 뛰어난 배우, 그럴듯한 특수 효과, 막대한 제작비 등을 투입하고 소설의 에피소드를 잘 연결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소설의 묵직함을 표현하기에는 2% 부족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헐리웃 상업영화의 한계에 부딪힌 것은 아닌지…. 
 
toward2030@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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