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책]팔월의 일요일들
[영화 속의 책]팔월의 일요일들
  • 관리자
  • 승인 2006.12.0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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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책 속에 발견된 낮선 이름



2006 년 독립영화의 핵

영화 <팔월의 일요일들>은 이진우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로서 제60회 에든버러 국제영화제, 제8회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독립영화제 등에 소개됐다.  독립영화라는 배고픈 방식으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짜임새와 독특한 구성은 팬들에게 호응을 받았고, 독립영화로서는 드물게 추가 상영을 실시 했다.
  영화 <팔월의 일요일들>이 시작하면 관객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것과도 같은 기분을 경험하게 된다.  얼터너티브 락밴드 칼렉시코(calexico)의 곡 “stinging nettle”이 몽환적으로 깔리면서 무려 3분 40초에 걸친 롱테이크가 등장하는데, 끝도 없을 것 같은 고속도로의 수평선이 느린 속도로 300도 가까이 회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격렬하게 전복되는 자동차.  충격적인 오프닝 장면은 나른한 일상을 뒤흔드는, 등장 인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사건의 시작을 예고한다.



교통사고, 그 후에 발견된 한 권의 책

  호상은 아내와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가던 중 전복사고를 당한다. 가벼운 찰과상으로 그친 호상과는 달리, 아내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아내의 부상에 괴로워하던 호상은 아내의 소지품 속에서 소설 ‘팔월의 일요일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책을 선물한 ‘이형주’ 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묘한 질투감에 빠진다. 그 남자의 생사 여부는 알 수가 없지만, 호상은 어딘가에 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찾아 헤맨다. 아내의 담당 의사 역시 헌책방과 인터넷을 뒤지며 그 책을 찾아 나서게 되고, 이로써 호상과 주치의 시내, 헌책방 주인인 소국의 얽히는 관계가 시작 된다.


 

소설 ‘팔월의 일요일들’
  주인공들이 얽히게 되는 계기이자 영화의 모티브가 된 소설 ‘팔월의 일요일들’은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거장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으로 사진가와의 사랑의 도피를 벌이다 추락해버린 한 여인과 7년 후 우연히 만난 사진가와 남편이 그녀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이야기 하는 내용이다.
  실종은 인간관계의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속으로 파묻혔거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들춰보는 계기가 된다. 
이 소설은 ‘실종’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기억’의 상대성을 얘기하고 있다.  그 여인은 생사를 알 수 없지만 실종된 상태이고,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사진가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 진실인지 아니면 자신의 편의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부수어진 인간들의 지워져가는 삶의 흔적을 가감 없이 더듬어보는 것이 잔잔한 감동의 원천임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과 일상 속의 우연,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믿고 싶은 기억이란 것의 불안정성은 영화 속에서 혼수상태인 아내와 그녀의 파묻혔던 과거를 파헤치려는 호상, 그리고 그것으로 얽혀지는 사람들의 관계 등은 비록 영화 속에서 표지로만 등장하는 소설『팔월의 일요일들』이 영화의 전편을 감도는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허구에 대한 집착

  존재 하지 않은 진실에 집착하고 있는 호상,  유부남 동료와 무미건조한 육체관계만을 이어가는 시내,  어머니와의 갈등에 휩싸여 있는 소국이 이끌어가는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논리적인 인과관계나 합리적인 이야기는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발적으로 난입하는 이미지와 에피소드를 조합할 때 비로소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의미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파열되어 버린 인간들의 한 조각의 기억에 대한 집착은 원작 소설 속의 사진가와 남편이 가지고 있는 왜곡되어 버린 기억들처럼 진실성을 희석하고 있다. 
  진실하지 않은 기억은 그저 상상해낸 하나의 픽션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픽션 속에 머물며 망가져가는 우리의 삶을 감독은 그려내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 된다.

[독서신문 권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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