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근의 사유(思惟)적 시집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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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은 도서출판 글벗 시선(詩選) 서른 일곱 번째로 세상에 나온 김충근 시인의 시집 『초월』에 나오는 에필로그의 일부이다.
반항 / 또렷해진 명지 / 해소 / 헝클어진 미학의 본질 / 복원 / 정묘한 견해의 만족 / 내려다보는 노래여, 무릇 낡았구나 / 그래서 / 절망과 망설임 / 비약과 절충 / 기만 그리고 모순 / 그래서 더 깊은 오해만 남기는. - <오해> 전문
이 시집에서는 <오해>란 작품과 같은 다분히 사유적이거나 사색적인 여러 시편들이 독자의 일상적 무의식 혹은 내면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감성을 ‘쩡그렁’ 하고 깨우고 있는 듯 하다.
빨간 것은 재수 없댄다 / 소원을 담지 말란다 / 이름도 쓰지 못한단다 // 축에도 끼지 못하는 푸대접에 / 찔끔 피똥 자국 남기고 / 불만의 분비물만 지린다 // 다 닳아서 죽고 싶은 심정은 / 통각 위에 동동 걸터앉아 / 붉은 비명으로 목 놓아 울었다 / 모두가 새빨간 거짓말! - <적필> 전문
『초월』이란 시집의 타이틀이 갖는 이미지도 좀 그러하거니와 시집 속에 든 많은 작품이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을 충만케 하는 특질이 와 닿는다. 어쩌면 그것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시인 김충근의 시세계일지도 모르겠다.
“우주는 넓고 넓다네. 고작 태양과 지구와의 공간 따위는 말하지 말게나. 너무나 멀고멀어 나는 내 영혼을 찾을 길이 없는 것일세. 나는 이 해변을 여전히 거닐고 있을 것이네. 자네도 이 해변을 거닐고 있었군, 그래. 친구여, 수면 위로 뜬 수많은 동그라미들과 백사장에 뿌리내린 모래알갱이들은 내가 만든 것이라네. 어쩌면 나는 영원히 이 해변을 거닐고 있을 것일세. 오, 친구여, 혹여 자네도 만나보았던 것인가?”
<육체의 악마>라는 제하의 프롤로그에 적힌 이 대목은 왠지 생 떽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어느 대목을 상상하게 만든다. 마치 깊은 우물 속의 물을 펌프질이나 하듯, 태만하고 느려터진 뇌를 바짝 긴장시키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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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끓는 상사화 노래 애타게 불러도 / 꽃 피면 잎 시들고 잎 나면 꽃 서글픈 가락이라 / 때 이른 소쩍새 춘정의 발동이라 하니 / 저질러 극심하던 욕정의 세월 작금에 원망하랴 / 보고 싶은 임 모습 볼일이야 / 이 내 몸도 뉘와 같이 누리련만 / 아, 포옹의 손길 서둘러 뿌리친 그대여 / 아서라, 춘풍아, 바람 비켜갈 꽃잎이라, / 구름의 품속에서 벗어날 달이라, 하지 마오.
― <춘풍이라는 오해> 전문
김충근 시인은 에필로그에서도 다음과 같은 아주 인상적인 말을 남기고 있다.
“이제 세기의 위대한 작가와 철학자들은 신의 죽음이 선포되던 그날 모두 따라 죽었다. 그럼에도 그대는 삿된 한계를 초월하는 운동을 벌리려 하는구나. (중략) 초월? 그대의 초월? 아이러니하게도 그대는 옥죄이는 관념을 훌훌 털어버리고 비상하려 하면서도 특히 모종의 주의와 경전을 신봉하면서도 우리 모두의 해방을 추구하려는 원천이 되려한다. (중략) 그대, 인간이여, 나약하다고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그 나약함을 알기에 우리는 더 위대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오, 그대이여, 사랑하는 인간이여, 그대의 운명은 오직 그대의 손에 달렸음은 진즉에 알고 있었던 터가 아니더냐. 초월은 바로 불굴의 투지의 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초월, 그 엄연한 진리의 열쇠를 항상 기억하라!”
소설가이기도 한 김 시인은 1961년 대구 태생으로 1998년 계간 ≪문학과 창작≫을 통해 등단한 뒤 『바보 죽다』와 『변종』등의 소설집, <이방인의 전성시대>, <환상>, <바보 예수와 미친 부처> 등의 단편소설, <잡문열전> 외 다수의 수필 등 개성 있는 작품들을 많이 발표한 작가이다.
/ 안재동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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