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언어로 직조된 전율 같은 가슴 떨림”
“식물성 언어로 직조된 전율 같은 가슴 떨림”
  • 안재동
  • 승인 2008.06.1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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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병훈 한영대역 시집 『소나무의 기도』 ◀

▲ 송병훈 시인     © 독서신문
계간 《아시아문예》 발행인 송병훈 시인의 한영(韓英) 대역 시집 『소나무의 기도』(아송 刊)가 세상에 나왔다. 매 작품마다 한글과 영문으로 나란히 수록되어 있는데, 영역은 김준호 시인(국제대경그룹 회장)이 맡았다.

 

사방에서 불러대는 소나무 친구들 / 어느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큰지 / 이쪽저쪽 바쁘게 귀 기울여 봐야 / 더 친한 벗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 그렇게 어린시절 나를 매만져 주던 / 벗들도 돌림병(솔잎흑파리)에 희생돼 / 드물게 몇몇 이웃들만 제자리에서 / 반세기 떠나 있던 친구를 찾고 있다 // 이제 새벽이슬 솔잎에 매달린 채 / 나오라 소리쳐도 곧바로 달려갈 / 휘영청 달빛에 하얀 솔잎 돼버린 / 내 고향 서면 친구에게로 가련다

―<친구에게로 가련다> 부분

 

앞의 시는 시집의 머리말에 들어있는 작품으로, 소나무에 대한 시인의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깊은 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작품 속에서 그는 소나무가 된다. 친구들의 불상사를 안타까워 하고, 친구들을 그리워한다. 보통사람에겐 그저 식물에 불과한 소나무가 그에겐 특별한 ‘친구’요, ‘고향’이다.

그렇듯, 송병훈 시인은 소나무를 유독 좋아하는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는 것 같다. 시집 제목부터 ‘소나무’로 시작하는 점도 그렇고, 그의 호(號) 또한 소나무와 관련 있는 ‘도송(島松)’이다. 뿐만 아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소나무문학회’의 회원들이 송운(松韻), 월송(月松), 송광(松光), 춘송(春松), 남송(南松), 애송(愛松), 송화(松花) 등으로 모두가 송(松)자 돌림의 운치 있는 호를 가지고 있다. 매우 이색적이고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도서출판 아송(亞松)에서 243쪽으로 간행된 이 시집은 <소나무Ⅰ>~<소나무Ⅴ>의 소나무 연작시 5편을 비롯해 <소나무의 기도> 등 16편이 ‘소나무의 기도’(1부), <5월은>, <비>, <화진포 이야기> 등 14편이 ‘봄, 여름’(2부), <가을바람>, <메밀꽃>, <가을은> 등 16편이 ‘가을, 겨울’(3부), <오늘의 너>, <말의 무게>, <눈물> 등 14편이 ‘사랑과 꿈’(4부), <할미꽃의 소망>, <하얀 언덕길>, <다섯처녀 비유> 등 10편이 ‘믿음으로’(5부), <광야에서 부르게 하소서>, <아리랑 고개로>, <도라지 역의 함성이> 등 31편이 ‘세상의 얼굴들’(6부)로 짜여져 있다.

 

‘예쁘게 빚은 모양대로 / 예쁜 짝을 만난다 해서 / 온 정성 다 하던 추석 // 그래도 잘 빚었다며 / 맨드라미 빨간 꽃을 / 의미 있게 수놓았다’(<송편> 부분)와 ‘무대 위에 펼쳐지는 / 병아리, 거위 떼들과 / 칠면조, 백조의 형제 / 깃털의 손짓 얄밉다’ (<손녀의 공연> 부분)란 대목들에서는 소나무에 대한 사랑 못지 않은 송 시인의 따뜻한 가족애도 엿볼 수 있다. 그의 손자 종민과 손녀 연재의 시도 각각 1편씩 이 시집에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시집은 특히 신앙과 자연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순수한 정신으로 살아가려는 시인의 마음이 곳곳에 배어있는 시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엄창섭 시인(관동대 교수, 한국시문학회 회장)은 송 시인의 시편들에 대해, “지나치게 분방한 상상력과 현실적 모자이크로 미적 퇴행을 거듭하는 답답한 우리시단에 신선한 활력으로 막힌 숨통을 예감과 서정성으로 열어”보였다고 갈파하면서, “행복한 꽃나무 가꾸기와 영혼의 잠식으로 해명되는 송병훈 시인의 시정신은 비교적 식물성 언어로 직조된 전율 같은 가슴 떨림이며, 동시에 그만이 겪는 황홀함이기에 지극히 서정적이다. 우리가 예감할 수 있는 시인의 실체는 지극히 온유한 심성의 소유자이기에 평화주의자로 확증될 뿐 아니라 생명의 꽃을 눈부시게 피워내는 지난(至難)한 행위는 그의 시편을 통해 드러난다.”고 해설한다.

 

▲ 소나무의 기도 표지     © 독서신문
악한 일에 눈과 귀는 외면케 하고 / 선한 일에 두 손 모아주는 나날로 / 자연을 가꾸는 음악과 시를 쓰면서 / 평화의 밝은 웃음만을 듣게 하소서 // 아름다운 꿈과 소망을 가득 담은 / 사랑의 송화분(松花粉)을 나르는 / 순풍이 세계 방방곡곡에 당도해서 / 튼튼한 뿌리가 내리도록 잡아주소서

―<소나무의 기도(祈禱)Ⅰ> 부분

 

악하고 추하거나 / 시끄럽고 궁핍해도 / 상처를 싸매줄 의사로 / 하얀 마음 닮게 해 주소서 // 하늘땅의 축복 받으며 / 반세기 등 돌리고 살던 / 한겨레의 한결같은 소망 / 두 손 잡게 하여 주소서

―<소나무의 기도(祈禱)Ⅱ> 부분

 

앞의 시 2편은 시집의 표제시에 해당한다. 시인의 반듯한 성품과 자연사랑, 인간애 등이 그의 소망어린 기도에 어우러지면서 독자의 마음도 작품 속에서 카타르시스된다. 옛부터 소나무의 기품과 속성이 인간세계에 시사하는 바 컸다. 복잡하고 이해타산으로 좌충우돌 하는 오늘날 세상, 이 시들엔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찌릿한 메시지가 담겨 있고, 그 앞에서 새삼 숙연해 질 뿐이다.

 

당신만나 / 살아가며 / 별러오던 / 한마디를 // 반백세월 / 지났어도 / 못하고만 / 묻어둔채 // 부족함을 / 품어가며 / 망설인그 / 날들만큼 // 숭늉처럼 / 음미하는 / 부끄러운 / 말의무게

―<말의 무게> 전문

 

송병훈 시인은 1941년생으로 춘천고와 강원대,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석사)를 마쳤으며,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와 삼영잉크페인트제조(주) 상무이사, 주식회사 에스 비 회장 등으로 일했다. 월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시부문)한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사)남북경제협력진흥원 상임고문, (사)남북청소년교류연맹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기도 하다. 현재 계간 《아시아문예》를 발행하는 등 활발한 문학·출판활동을 통해 노익장을 보여주며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안재동 시인/평론가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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